80대 환자를 소개받아 일을 시작한 다음 날, 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가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66세에 수강생 40~50명 중 남자 두 명뿐인 교실에서 공부해 자격증까지 땄지만, 내 첫 요양보호사 일은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찔했던 일은 교육 중 현장 실습에서 벌어졌습니다.수강생 40~50명 중 남자는 두 명뿐이었다노인 인구가 계속 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접했습니다. 실제로 내 주변만 봐도 나이 든 사람이 많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도 자꾸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당시 나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새로 취직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별다른 준비 없이 사게 된 것입니다.25평 정도 되는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가 있었습니다. 야산은 약 4만 평이었고 주변 전답도 2천 평 정도 됐습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가격이면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었고 잠시 중개 업무를 해봤으며, 아들도 투잡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2~3년 정도 보유한 뒤 다시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동산을 조금 안다는 마음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4만 평 야산보다 무거웠던 3억 5천만 원 대출집과 땅을 살 때 지역농협에서 약 3..
“아버지 치매 15년, 어머니 5년 모심. 그래도 살아계셨을 때가 그립다.”그 세월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버티고, 서로 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 말하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회사생활을 마친 뒤에도 다 끝난 사람처럼 지내고 싶지 않아 공인중개사 시험을 붙들었다. 아들은 한 번에 붙었지만 나는 세 번을 치렀고, 떨어진 줄 알았던 마지막 시험은 문제 하나로 뒤집혔다.아버지 치매 15년·어머니 5년, 월급 200만원으로 버틴 시간아버지는 치매로 15년 정도 사셨고 어머니는 5년 정도 사셨다. 두 분을 모시는 동안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살아계셨을 때가 그립다. 치매를 앓기 전의 부모님만 그리운 것도 아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던 그때의 모습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는데 걱정이 먼저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탕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풀리고 목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편안하려고 들어간 곳이니 머릿속도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그런데 은퇴하고, 특히 70살이 되고부터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예전 같은 편안함이 잘 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만 달라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평소에는 그냥 지나갔던 생각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들어왔다.생각한다고 답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른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지도 않았다.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목욕탕에서까지 이러나 싶었다. 70살이 되고 보니 몸을 쉬게 한다고 마음까지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