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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런 인연 안 만들겠다.”
엔젤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그렇게 맹세했어요.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엔젤 같은 녀석이 다시 나한테 온다면 나는 정말 외면할 수 있을까.
참 이상하지요. 나는 오래전부터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개는 넓은 마당이 있는 시골 같은 데서 키우는 짐승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나중에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밤새 찾아다니다 파출소에 신고까지 했습니다.
반려견 반대했던 나, 아들 강아지와 개똥 사건
내가 결혼하고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옆집 친구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고 좋아 보였나 봅니다. 아들이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자고 얼마나 졸라대던지 결국 흰털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게 됐어요.
나는 처음부터 걱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아들이 밥도 잘 주고 같이 놀고 청소도 잘했어요.
그런데 한 보름쯤 지나니까 싫증이 났는지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마루바닥이며 소파며 집안 청소는 내 담당이 됐어요. 아들이 키우겠다고 데려온 강아지인데 내가 밥 챙기고 청소하고 뒤처리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때 나는 정말 고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아들과 이야기해서 강아지를 친척집으로 보냈습니다.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집에서 반려견을 키우지 않았어요.
그 아들이 벌써 마흔 살이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설시장 주차장에서 주차 문제로 한 젊은 남자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어요. 우리 아들뻘 정도 되는 사람이었는데 강아지를 안고 차에서 내리더니 “어르신네가 참 너무하시네” 하면서 따지더라고요.
나는 더 상대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타러 나갔다가 기가 막힌 장면을 봤어요.
바로 그 남자가 자기 강아지 배설물을 내 차 타이어 쪽에서 닦고 있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개똥을 아무 데나 싸면 되나” 하고 고함을 좀 쳤어요.
그 남자는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법대로 하세요” 하면서 우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 나보고 참으라고 해서 씩씩거리면서 차를 타고 나왔어요.
그날 하루가 정말 기분 나빴습니다.
나는 또 생각했어요. 역시 나는 집에서 개 키우는 건 정말 싫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손녀 똘이에게 간식 하나 줬다가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들과 손녀가 우리 집에 놀러 왔습니다.
손녀 손에는 아주 작은 토이푸들 한 마리가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강아지를 데려왔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손녀에게 물었어요.
“민지야, 강아지가 그렇게 좋나?”
손녀는 자기가 세 달 동안 키우면서 목욕도 시키고 훈련도 하면서 너무 좋아하게 됐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강아지가 별로였습니다.
아들과 손녀가 마트에 물건을 사러 나가면서 잠깐 강아지를 나한테 맡겼어요. 이름은 똘이였습니다.
나는 호기심에 똘이를 안아봤습니다.
그때는 반려견 먹거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때라 내가 먹고 있던 육포를 조금 줬어요. 그러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금방 나한테 친한 척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당시 실제로 한 행동을 적은 것이지, 사람이 먹는 육포를 반려견에게 먹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마루에 내려놓고 내가 “손” 하니까 앞발을 내밀어요.
“왼손” 하니까 또 왼손을 내밀고, “앉아” 하니까 앉습니다.
그러더니 기분이 좋은지 바닥에서 뒹굴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참 신기했어요.
나는 그전까지 나이 든 이웃들이 반려견을 보물처럼 안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보다 더 좋다는 소리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똘이가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묘했어요.
개똥 때문에 싸웠던 사람이 내게 푸들을 줬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참 모릅니다.
얼마 뒤 개 문제로 다퉜던 그 젊은 사람을 다시 만났어요.
그 사람은 나한테 공손하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 손녀가 키우는 것과 같은 종류의 푸들을 한 마리 나한테 선물로 줬어요. 생후 6개월 정도 된 강아지였습니다.
강아지 이름이 원래 천사라고 해서 처음 며칠은 나도 그냥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영어로 엔젤, 엔젤 하다 보니 나중에는 “우리 엔젤”이라고 더 많이 불렀어요.
처음에는 고민도 많았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키우던 강아지는 결국 내가 청소를 떠안다가 친척집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손녀와 놀던 똘이가 계속 생각났어요. 나도 한번 제대로 키워보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날부터 반려견 관련 책도 보고 유튜브도 찾아봤어요.
나는 원래 TV를 보면 일일연속극을 주로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엔젤과 살기 시작하면서 동물농장이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봤습니다.
내가 이렇게 변한 게 나 스스로도 참 신기했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엔젤을 데리고 뒷산에 갔다가 잃어버렸습니다.
밤이 되도록 엔젤이 안 보여서 이리저리 찾아 헤맸어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인근 파출소에 가서 신고까지 했겠습니까.
그날 밤은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과일상가 쪽 마트 포장박스 근처에 있는 엔젤을 발견해서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엔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났어요. 외출은 열흘에 한 번꼴 정도로 줄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둘이 집에서 죽자사자 뒹굴며 놀았습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날에도 엔젤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습니다.
나는 그 눈을 보면 얘가 내가 자기를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두 번의 반려견 일을 겪고서 알게 된 현실
아들이 졸라서 데려온 첫 강아지는 보름쯤 지나자 밥과 청소를 내가 맡게 됐고 결국 친척집으로 보냈습니다.
반대로 내가 마음을 주고 키운 엔젤을 잃어버렸을 때는 파출소까지 찾아갈 정도로 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반려견과 산다는 것은 예뻐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보는 일도 있었고, 잃어버릴까 겁나는 날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헤어지는 일까지 내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생후 두 살 엔젤을 보내고, 다시는 안 키우겠다고 했다
그렇게 엔젤과 약 1년을 꿈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엔젤이 이상했어요.
힘이 없어 보이고 밥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물만 계속 마시고 이틀, 사흘을 축 처져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걱정돼서 동물병원에 데려갔어요.
그날 X선 촬영과 진찰을 받았고, 나는 수의사에게 위쪽에도 이상이 보이고 장도 심하게 꼬여 있으며 염증과 악성종양이 심하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수의사는 사람으로 치면 말기암과 비슷한 상태라고 설명하면서 수술도 위험하고 회복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엔젤은 생후 두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벌써 청춘이라고 하겠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귀여운 애기였어요.
집으로 데려와 병원에서 일시적으로 처방받은 약을 먹이며 지켜봤습니다. 엔젤은 밥은 거의 먹지 못하고 우유나 물 정도만 조금 넘기던 때였습니다.
그러고 약 일주일 뒤에 우리 엔젤은 자기 고향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나는 친자식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너무나 정이 들었습니다.
나는 원래 감정, 그중에서도 뜨거운 정이라는 것은 사람끼리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엔젤을 보내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엔젤에게 느낀 정하고 사람에게 느끼는 정이 뭐가 그렇게 다르겠나 싶었어요.
내 자식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본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엔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면서 김해에 있는 반려견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화장을 하고 수목장을 했어요.
돌아서 나오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맹세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뒤 엔젤의 물건과 흔적도 모두 정리해버렸습니다.
그 뒤 나는 몸살이 나서 일주일을 끙끙 앓았습니다.
예전의 나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개는 마당 넓은 시골집에서나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강아지 한 마리를 보내고 몸살까지 났으니까요.
지금도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보면 문득 우리 엔젤 생각이 납니다.
“우리 엔젤은 자기 나라 하늘나라에서 진짜 천사가 돼서 이제는 안 아프고 잘 살고 있겠지.”
가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다시는 인연 안 만들겠다 맹세했지만,
엔젤 같은 녀석이 다시 나한테 온다면 나는 또 고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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