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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새가 빠지게 넣어가다가 몇 달 전에 해약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이종사촌 동생이 전화로 한 말입니다. 가게 장사가 어려워 반지와 목걸이까지 팔고, 끝내 암보험도 해약했는데 몇 달 뒤 건강검진에서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답니다. 수술을 앞둔 동생의 풀이 죽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나도 매달 25일이면 보험료 내라는 문자를 받습니다. 실손보험, 화재보험, 건강보험, 운전자보험, 암보험, 치매보험까지 합하면 한 달에 41만원이 빠져나갑니다. 나이가 드니 지갑은 가벼워지고, 수시로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습습니다.
그중 암보험과 치매보험은 아들이 매달 내줍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데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내가 예전에 암으로 고생했고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 암이 재발하거나 치매가 오면 결국 지가 고생할 테니 미리 방패막이를 세워둔 것 아니겠나 하고요. 넓게 생각하면 효자 아들이라고 남들에게는 이야기합니다.
암보험 해약 상담, 오히려 간병비 추가한 날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개인보험이 없었습니다. 직장단체보험만 가입해 놓았는데 거기서 약 2,000만원을 받아 무사히 치료했고, 내 돈은 별로 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개인 암보험이 있었다면 별도의 진단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싶어 그때는 “아, 보험을 넣어둘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암 치료를 마친 뒤 개인 암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벌써 13년째입니다. 정확히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낸 돈만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은 될 것 같습니다. 퇴직하고 4~5년까지는 크게 못 느꼈는데, 벌이가 줄어드니 보험료가 조금씩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내주는 보험료도 결국 돈입니다. 내가 챙겨야 하나, 가입한 보험을 하나쯤 해약해야 하나 싶어 담당자와 상의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다그쳤습니다. 암이 언제 전이되거나 재발할지 모르는데, 벌이도 별로 없는 노인이 치매까지 와서 자식도 못 알아보고 가족들 애를 먹일 참이냐고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작아졌습니다. 암과 치매라는 말은 사람을 참 약하게 만듭니다. 미래가 없는 불행한 끝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아 겁이 났고, 결국 해약하지 못하고 물러섰습니다. 얼마 뒤에는 지인의 소개로 비슷한 보험을 살펴보다가 간병비 보장까지 추가했습니다. 줄이러 갔다가 오히려 하나를 더 얹은 셈입니다.
보험을 해약하기 전에 내가 다시 보는 것
월 보험료만 보지 않고 지금까지 낸 돈, 해약환급금, 갱신 여부, 보장 만기, 재발암·전이암의 지급 조건과 해약하면 사라지는 특약을 한 장에 적어봅니다. 담당자의 말만 듣고 결정하지 말고 보험사 고객센터에도 같은 내용을 확인해야 마음이 덜 흔들립니다.
사촌동생 전화, 20년 보험 해약하고 몇 달 만에 위암
그러던 어느 날 이종사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요, 암 수술한 지 몇 년 되었는교. 지금은 이상 없는교. 보험은 가입했는교.” 나는 완치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암보험을 넣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줬습니다.
동생은 “그래도 다행이네요” 하더니 목소리가 푹 꺼졌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초기라서 위 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가게 장사가 힘들어 반지와 목걸이까지 팔았고, 20년 동안 새가 빠지게 넣던 암보험도 몇 달 전에 해약했다고 했습니다.
“행님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 말을 듣는데 나도 속으로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느님도 참 장난을 많이 치는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수술 잘 받고 나오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서랍을 열었습니다. 내 보험계약서를 꺼내 약관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41만원이 아깝고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니 글자 하나하나가 달리 보였습니다. 보험을 펼쳐놓고도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르는 조건이 있을까 불안해져 한숨만 나왔습니다.
아들에게 전화해 사촌동생 이야기를 쭉 해줬습니다. 아들은 “모르고 살아가는 게 약이라지만 주변에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구나 작아지는 기다. 그런 생각 그만하고 그냥 씩씩하게 사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 버티고 있는 아버지에게 주는 특별 보너스라며 용돈 1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아들 용돈 10만원으로 친구들 보험 설교
다음 날 나는 그 10만원으로 친구들을 불러 술과 안주를 샀습니다. 아들이 씩씩하게 살라고 준 돈인데, 나는 친구들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보험 설교를 했습니다. 사촌동생 이야기도 하고, 내 암 수술 이야기도 하고, 해약하려다 간병비까지 추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친구 둘은 니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맞기는 개가 몽둥이가 맞나. 나는 실손보험 넣고도 수십 년 병원에 한 번 안 갔다. 다른 질병보험도 오래 넣었는데 받은 게 뭐 있노. 맨날 보험료만 밀어 넣었지.”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게 보험인 기다, 야 임마. 니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아픈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기다.” 내 말이 보험 설명서에 적힌 정답은 아닙니다. 병원에 가지 않은 세월이 손해처럼 느껴진다는 친구에게, 건강하게 지낸 세월부터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내 식의 말이었습니다.
보험료 41만원은 병원비가 아니라, 아직 오지도 않은 병에게 매달 먼저 건네는 겁값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 겁값 덕분에 마음 한쪽에는 믿는 구석이 생깁니다. 하지만 줄어드는 통장 잔고는 여전히 내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유지가 정답인지 해약이 정답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불안하다고 덜컥 가입하거나, 힘들다고 약관도 확인하지 않고 덜컥 해약하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니 암이나 치매 걸릴래, 아니면 암 치매 안 걸리고 불쌍한 사람 돕는다 생각하고 그냥 계속 보험 넣을래?”
그 친구는 묵묵부답하고 술을 들이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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