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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오전 9시 용두산공원, 혼자 온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dobadalife 2026. 8. 19. 15:47

목차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오늘은 누가 안 불러 주나 기대하면서 일찍 눈을 떴습니다. 그러다 혼자 집을 나섰죠.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대부분 짝이거나 그룹으로 왔더라고요. 나만 홀로인 것 같아서 초라한 노인으로 보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괜히 왔나 하고 작은 후회도 했어요. 그날 그 마음이 어떻게 뒤집혔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오전 9시 용두산, 나만 짝이 없었다

    그날 아침에 TV를 보는데 부산에 가볼 만한 명소 중에 용두산공원이 나오데요. 그래서 그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빨리 목욕을 하고 노인 무료 지하철을 타고 올라갔어요.

    시간이 오전 9시 정도인데도 관광객이 제법 있습니다. 외국인도 보이고요. 그런데 앞에서 말한 그 마음이 든 겁니다. 다들 둘씩 셋씩 붙어 다니는데 나만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그래도 왔으니 좀 걷기는 했습니다. 산책을 조금 하고 나서 벤치에 앉았어요. 영도섬하고 부산항이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이런저런 옛 추억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아무도 나를 안 불러서 나온 사람이 벤치에 혼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어요.

    선생님, 저 술 한잔 사주실래요

    그때 옆에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서 말을 겁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부산분이신가예. 이러는 거예요.

    나도 부산 출신 사나이인데, 그날은 그 여자의 경상도 사투리가 반갑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았어요. 혼자 왔냐고 묻고, 자기도 혼자 새벽에 출발해서 여기에 왔다고 하네요.

    약간 불안하고 당황했습니다. 하도 요즘 세상에 이상한 여자가 노인들에게 접근해서 사기도 친다고 하니 경계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보니 그게 아니라고 판단이 들었어요. 그러다 이러는 겁니다. 선생님, 저 술 한잔 사주실래요.

    그래서 일단 술보다는 공원 전망대 쪽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은 59세였어요.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 살고 있고, 이렇게 혼자 겁 없이 집을 떠나 이런 곳에 온 것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30대 초반에 군인 남편과 사별하고 딸 둘을 정신없이 키웠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로지 두 딸만 세상의 모든 행복인 양 살았대요. 정말 바보처럼 억울하게 살았다고, 후회스럽다고 하데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디 그런 사람이 여사님 혼자만이겠어요. 남의 이야기처럼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자기만 그런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편안하게 하소연하도록 두고 같이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딸들이 요즘은 자꾸만 멀어지는 게 느껴져서, 어느 날 우울증인가 싶어 병원에 가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딸들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야기하네요.

    자갈치 횟집에서 내가 한 말

    그러고 나서 자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이야기해 주데요.

    어느 날 결심을 했답니다. 내가 너무 세상 모르고 살았는가, 나도 이제는 내 맘대로 하고 살 거야,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렇게 고민하면서 사나. 그러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대요.

    그다음 날 백화점에 가서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미장원에 가서 마사지도 받고, 등산복도 한 벌 샀답니다. 결혼 후에 이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이 너무 용감해 보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밤에는 누워서 생각을 했답니다. 내일은 무작정 여행을 갈 거야. 그러고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새벽에 바로 실행을 한 거예요. 그런데 대구에서 멀리도 못 가고, 처음으로 혼자 온 여행지가 부산 용두산공원이었습니다. 벼락처럼 움직이고 행동한 자기가 너무 용감해서 스스로를 칭찬했다고 하데요.

    그러면서 좋으신 분 같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합니다. 나는 그 여성분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참 친근감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좀 있다가 정말로 낮술 한잔하고 싶다고 해서 자갈치 시장 횟집으로 갔습니다. 수산시장 2층 횟집에 가서 해물이랑 회 한 접시를 먹었어요. 거기서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주인이고 내가 있어야 이 우주가 존재하니까, 자기 스스로를 아끼면서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아갑시다. 그렇다고 함부로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품위 있게 살아가라고 충고도 해 주었어요.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멀리 여행도 다녀오고, 마음과 가슴의 힘을 더 키우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일상생활 하다가 간혹이라도 생각나면 안부나 달라고 했고요.

    부산역까지 바래다주는데, 짧은 만남이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그분의 모습이 보였어요. 나는 거기서 부산역 지하철로 갔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여운이 남았어요. 아침에는 나만 혼자인 것 같아서 초라해 보인다고 괜히 왔나 했는데, 그날 그 공원에 혼자 온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작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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