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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70살 혼자 사는 남자, 친구들 앞에서 뻥 친 밤과 병아리콩 죽

dobadalife 2026. 8. 9. 21:07

목차


    “하이에나처럼 일자리 찾아다니는 중.”

    현재 내 나이 70살이다. 일에 대한 열정은 아직 남아 있는데 나를 받아주는 곳은 만만치 않다. 개인 사정으로 경남 양산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보니, 괜히 우울해지고 눈물이 고이는 날도 생겼다. 이런 마음이 시작된 지 한 7, 8개월쯤 된 것 같다. 일이 안 잡힐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밤에는 친구들보다 작아 보이는 내 모습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고, 새벽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를 맞이한다. 요즘 내 70살 일상은 그 두 마음 사이를 오가고 있다.

    70살, 하이에나처럼 일자리를 찾는 중

    나는 지금도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하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보이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내 표현으로는 하이에나처럼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있지만, 아직 내 몸과 머리를 써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렇지만 70살인 나를 받아주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경험이 있다고 해서 불러주는 것도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취업할 때의 나이는 그냥 숫자로 끝나지 않았다. 문 앞까지 가보기도 전에 내 한계를 먼저 만나게 되는 때가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 차이가 더 크게 보일 때가 있다. 친구들은 금전이나 부동산도 좀 있고, 지금은 일보다 관광이나 여행을 다니며 지낸다. 틈만 나면 어디로 놀러 가자고 하지만 나는 불참할 때가 많다. 여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 형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일을 찾고 있는데 친구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여유 있어 보였다. 누가 더 잘 살고 못 사는 문제는 아니라고 머리로는 생각한다. 그래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된다. 친구들 앞에서는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웃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열등감 같은 것이 자꾸 올라왔다.

    부산 친구들 앞에서 뻥을 치고 돌아온 밤

    전번 토요일에는 부산에 있는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친구가 모두 나보다 행복해 보였다. 실제로 그 친구들의 속사정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부럽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질투심도 났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중에 투잡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오픈하면, 그때 아버지인 나를 책임자로 일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앞으로 내가 맡을 일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뻥이었다. 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따로 투자해서 일을 더 벌일 생각은 없다. 그 사실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나도 뭔가 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말을 하는 동안에는 그럴듯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자신이 작아 보였다. 친구들이 나를 무시한 것도 아니고 자랑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 혼자 친구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했고, 나 혼자 지기 싫어서 없는 일을 만들어 말했다. 그래서 친구보다 내 자신을 더 원망하게 됐다.

    밤늦게 양산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마시며 위안을 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지, 남들과 너무 비교하지 말고 나는 나대로 자그마한 행복이라도 소중히 여기자고 순간적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줄 알았는데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만만한 TV를 켰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결국 TV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한 뻥은 그 자리에서 끝났지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밤늦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새벽 2시와 3시 사이, 아침에는 나에게 감사한다

    요즘은 새벽 2시나 3시에 자주 깬다. 아침에는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고, 낮에는 컴퓨터와 TV를 보거나 운동을 하며 소일한다. 그런데 잠에서 깨버린 새벽에는 할 일이 없다. 조용한 집 안에서 혼자 누워 있으면 낮에 밀어두었던 생각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보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뭔가 뚜렷이 이룬 업적도 없이, 그냥 자다가 허망하게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죽으면 편할까 싶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두렵다. 잠이 오지 않으면 냉장고 문을 열어 담가둔 차가운 매실주 한 컵을 마실 때도 있다.

    그래도 새벽이 지나면 뉴스가 시작되고 일상이 다시 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눈뜨게 해줘서 고맙다고 나 자신에게 감사드린다.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아 쓰고, TV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켠다. 그다음 휴대폰으로 유튜브 숏폼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한 2~3년 이어온 나의 작은 순서다.

    새벽에 했던 생각이 아침이 됐다고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안경을 쓰고 리모컨을 누르는 동안 나는 다시 오늘 쪽으로 돌아온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요리 방송을 자주 본다. 화면 속 음식을 보고 있으면 오늘 내가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 하나가 오전의 할 일이 된다.

    병아리콩 50%, 3주 만에 내가 만든 죽

    나는 돼지고기 삼겹 수육을 제법 잘 만든다. 술안주로는 최고다. 최근에는 술안주보다 아침에 먹을 것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됐다. 내가 위가 좀 약한 편이라 부담 없이 먹을 특별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병아리콩과 찹쌀을 갈아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그대로 보고 따라 한 음식은 아니다. 내가 직접 비율을 바꿔가며 만들었다. 처음에는 병아리콩을 20% 정도 넣어봤는데 고소한 맛이 적었다. 그다음에는 30%, 다시 40%로 늘려봤다.

    한 번 끓이면 2~3일 먹을 분량이 나왔다. 다 먹고 나면 다음번에는 비율을 조금 바꿨다. 그렇게 약 3주 동안 만들어 먹어보니 병아리콩과 찹쌀을 1대 1, 병아리콩 50%로 맞췄을 때 가장 고소하고 맛있었다. 물의 양도 너무 되거나 묽지 않게 내 입에 맞춰 조절했다.

    일자리를 찾을 때에는 내가 선택받아야 하지만, 이 죽을 만들 때에는 내가 재료와 비율을 정했다. 20%에서 시작해 50%까지 올리는 동안 실패라고 할 것도 없었다. 덜 고소하면 다음번에 병아리콩을 더 넣으면 됐다. 그렇게 내가 먹을 아침밥 한 가지를 내 손으로 완성했다.

    언젠가 친척 누님 병문안을 갈 일이 있었다. 내가 끓인 병아리콩 죽을 보온병에 담아 가져갔다. 누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노인네 남자가 정말 솜씨가 좋다”며 죽집 전문 식당을 해보라고 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들의 사업을 말했지만, 누님 앞에서는 내가 실제로 만든 죽 한 통이면 됐다. 거창한 책임자 자리도 아니고 뚜렷한 업적도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순간에는 내 자신이 작아 보이지 않았다.

    죽집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침에 먹을 병아리콩 비율은 50%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