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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부의금 관리 30년, 눈 마주치고 고개 돌린 날의 기록

dobadalife 2026. 8. 16. 19:37

목차


    옛 직장 상사 아들 결혼식장이었어요. 축의금을 내고 돌아서는데 옛 직장 동료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몇 달 전에 딸 결혼한다고 나한테 연락을 줬던 사람인데, 나는 부조도 안 하고 가지도 않았거든요.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급히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날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몰라요. 그 돈 몇 푼 때문에 참, 이렇게 사나이 자존심을 구겨버리다니.

    부의금 관리, 30년치 한글파일에 이름만 주욱

    오늘 아침에 폰으로 문자를 확인하다가 몇 달 전 문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날 부의금 관련해서 문자가 세 개나 왔던 날입니다. 하나는 사촌 딸이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고, 또 하나는 친구 모친이 돌아가셔서 연락이 왔고, 또 하나는 옛 직장 동료가 막내딸 결혼시킨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때 대략 계산해 보니 부의금으로 30만원에서 40만원은 나갈 것 같았어요. 아이고, 이번 달도 빠듯하게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문자가 오면 나는 컴퓨터부터 켭니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부의금 목록이 거기 있거든요. 한 30년치가 한글파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따로 정리도 못 했어요. 그냥 폴더에 부의금 이름만 주욱 적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 찾아보는 것도 정말 일이에요. 이름도 비슷비슷하고, 내 기억하고 숫자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사람이 그때 얼마를 했더라, 그걸 찾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이제는 너무 많이 걸립니다.

    그 파일을 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게 다 사람들이 나한테 해준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하는 거고요.

    아들한테 30만원 받은 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간만에 아들한테 전화를 했지요. 우스갯소리로 하하 웃으면서, 이번 달 부의금이 왜 이렇게 많은지 큰일이네, 하고 그냥 흘려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무심코 용돈 얘기를 꺼냈어요.

    그랬더니 아들 왈, 아빠도 그런 거 이제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데요. 모두들 다 형편도 어렵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건 솔직히 맞지만 앞으로 돌려받지 못할 경우도 많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러는 겁니다.

    맞는 말이에요. 나도 압니다. 그런데 나는 아들에게 다시 반문했지요. 야, 이 부조금은 니 결혼할 때도 다 받은 거야. 지금은 내가 다 갚아줘야 되는 거야. 그러고는 서운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후에 아들에게서 30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왔어요. 내심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어요. 사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로 줄 줄 알고 전화를 했던 거거든요. 그래도 부의금을 낼 수 있게 됐으니 자존심은 차릴 수 있었네요. 다행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친구 모친 장례식장에도 참여하고 사촌 딸 결혼식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옛 직장 동료 딸 결혼식은 사실 부조도 안 하고 참석도 안 했어요.

    결혼식장에서 눈 마주치고 도망쳤다

    퇴직한 지가 벌써 10년쯤 됐습니다.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례상 부조를 하고 지내온 사이였어요. 그런데 그냥 무심코, 이 나이에 언제 또 만나겠냐 싶어서 마음이 내려놓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항상 마음이 찜찜했었어요.

    그러던 차에 옛 직장 상사한테서 청첩장이 왔습니다. 이 상사는 나하고 계속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서로 잘 챙겨주던 분이에요. 그분 아들이 이번에 결혼을 한다길래 내가 결혼식장에 갔지요.

    그런데 거기서 그 동료를 만난 겁니다. 몸 둘 바를 몰랐어요. 그다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밖으로 나와서 인근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소주 한 병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옛날의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나더라고요.

    계속 그 동료의 눈빛이 아른거렸어요. 그리고 사실 말이지요, 아들이 준 돈으로 충분히 낼 수 있었습니다. 순간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못 갔고,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못 간 게 정말정말 후회가 됐어요.

    그런데 그때도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갈지 말지, 갈지 말지. 그날 그 동료 딸 예식장도 지하철로 금방 가는 거리였고 안 갈 이유도 없었는데요. 나는 계속 못 간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참.

    도리를 지켜야 된다고 우리 아들한테는 신신당부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앞으로 이런 일이 내가 죽기 전까지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더라도 나는 아마 계속 못 갈 이유를 만들어서 변명을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 나이 때 5만원 10만원 정말 소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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