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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깡통시장 나들이, 45년 만에 '어이 주병장 아이가' 외쳤다
어이 주병장 아이가. 내가 그렇게 외치자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떠나갈 정도였어요. 부산 부평동 깡통시장 안, 당면 한 접시 놓고 막걸리를 마시던 자리였습니다. 옆자리 노인하고 군대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서로를 알아본 겁니다. 45년 만이었어요. 그 친구도 곧바로 육군병장 도병장이네 하고 받더라고요. 우리는 뜨겁게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깡통시장, 20대 고갈비 골목을 다시 걷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구나 싶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한참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꿈틀거리죠.
날씨가 쌀쌀한 초겨울 어느 일요일이었어요. 하릴없이 그냥 돌아다니고 싶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같이 간 사람은 없어요. 그냥 혼자 갔습니다.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광복동 고갈비 골목도 걸었어요. 고갈비라는 게 고등어 구이인데, 내가 철없던 20대 때 자주 갔던 골목입니다. 그 골목을 나이 일흔에 다시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데요.
그러고 나서 부평동 깡통시장도 구경했습니다. 배도 출출하고 해서 시장통 안에 당면이랑 잡채, 어묵 같은 걸 파는 가게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당면 한 접시랑 막걸리를 시켰습니다.
먹고 있는데 내 옆에 내 또래 노인이 앉아 있더라고요. 딸처럼 보이는 여성하고 일곱, 여덟 살쯤 되는 손녀랑 셋이서 어묵하고 잡채를 먹고, 노인네는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노인이 서울 말씨를 쓰길래 좀 의아했죠. 그리고 다른 한구석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도 보였습니다.
'어이 주병장 아이가' — 45년 만의 재회
그 군인을 보고 내가 옆자리 노인에게 툭 던졌어요. 아이구, 나도 저런 군인 시절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겁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실례지만 어디 근무했느냐고 묻더라고요. 자기는 포병 부대에서 제대했다고요. 어라, 나도 포병 제대했는데. 그 당시 기억으로 내 주특기는 행정병 900이라고 이야기하니까, 자기는 133 포병 측지병으로 경기도 파주에서 근무했다고 하네요. 정말 놀랐어요.
나는 45년 전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서로를 알아본 겁니다. 앞에서 말한 그 순간이에요. 어이 주병장 아이가. 육군병장 도병장이네.
그 친구는 서울 성북구 미아리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산다고 나중에 알았어요. 그날은 다음 날이 자기 생일이라 부산 딸네 집에 왔다고 하네요. 하루만 어긋났어도 못 만났을 겁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친구 딸과 손녀는 먼저 보내고, 조용한 커피숍으로 갔어요.
눈 속 소주·158밀리 군화, 그 전우애
커피숍에 앉으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시절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어요.
같은 내무반에서 유일한 동기가 주병장 그 친구였습니다. 훈련 때나 잠잘 때나 항상 모포를 내 옆에 깔고 생활했죠.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일병 때 겨울 이야기였어요.
내무반 막사 주위에는 흰 눈이 쌓이고 바람도 몹시 부는 날이었습니다. 22시 야간 보초 근무에 나가려는데 그 친구가 따라 나왔어요. 눈 속에 파묻어 둔 소주 1병하고 새우깡 1봉지를 주면서, 보초 서면 추우니까 고향 생각 하면서 먹으라고 하데요. 그때는 그 소주 맛이 꿀맛이었죠.
그리고 밤 12시에는 나와 그 친구가 보초 교대를 하게 돼 있었어요. 나는 소주 반병을 남겨서 그 친구에게 주면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전우애 아이가. 그리고 조심해서 잘 먹고 와, 하고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그 친구가 군화 이야기를 꺼내데요. 내가 상병 때였습니다. 다음 날 외출을 가려는데 군화가 너무 지저분해서 새것으로 구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밤에 옆 내무반에 가서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사이즈 158밀리 군화 한 켤레를 아침에 내 침상 밑에 갖다 놨어요. 몰래 훔쳐 왔는지 어쨌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유성매직펜으로 군화 안쪽에 내 이름을 크게 써놓고는, 아무 말 없었다는 듯이 깔깔거리더라고요. 그 모습이 선하게 밀려오데요. 인정이 많은 군대 동기였는데 말입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어요. 추억이 새록새록 하면서, 요즘 군대는 과연 이런 추억들이 있을까, 이런 인연들이 있을까 싶어 가슴이 아릿한 것 같았습니다. 젊은 시절에 읽었던 피천득 님의 인연도 생각나더라고요. 그 글 속의 주인공 아사꼬는 여자지만, 내 인연의 주인공은 주병장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이라 너무 좋아요.
친구 공복혈당 190, 나는 오늘 114
헤어질 때 우리는 맹세를 했어요. 나이 드니 친구도 줄어들고 세월이 아쉬우니, 잘 버티면서 하루하루를 재밌게 살자고요. 그리고 수시로 안부 묻자고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소식이 뜸해졌어요.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알아봤습니다. 혼자 생활하다 보니 건강을 많이 돌보지 못했는가, 당뇨가 심해서 공복에 190이나 나온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네요. 그러면서 나보고는 도병장 자네도 건강을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자기 몸이 그 지경인데 내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얼마 후에 나는 인터넷에서 혈당측정기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2일 간격으로 체크를 합니다. 오늘은 빈속에 나의 혈당이 114가 나왔네요.
45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한테 준 게 결국 이겁니다. 눈 속에 파묻어 둔 소주를 꺼내 주던 친구가 이번에는 몸 챙기라는 말을 주고 갔어요. 그래서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손끝을 찔러 봅니다. 그리고 다음에 통화할 때 자네 몇이냐고 물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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