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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묻지마 관광 처음 가서 생긴 일, 선글라스 뒤에 녹내장이 있었다

dobadalife 2026. 8. 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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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내 옆에 앉은 얌전해 보이던 여성이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 이런 양아치 같은 사람이 있나. 뒷자리에서 술 취해 떠들던 남자한테 그렇게 쏘아붙이는 겁니다. 옆에 있던 내가 너무 놀라서 말렸어요. 검은 라이방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었는데, 그 선글라스를 그날 하루 종일 한 번도 벗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알았어요.

    묻지마 관광 버스, 첫 경험에서 생긴 일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 동생처럼 지내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한날은 일요일에 부산 지하철 동래역으로 가자고 하데요. 하루치기로 다녀오는 나들이라고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사실 예전에 코로나 오기 전에도 다른 아는 친구와 가기로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쑥스러워서 못 갔습니다. 그때는 은퇴한 60대들 사이에 그런 모임이 유행이었죠.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활동한다고 하네요. 목욕탕 그 친구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간다고 합니다.

    회비 5만원을 내고 45인승쯤 되는 관광버스에 탔어요. 아직 시간이 이른가, 50대 60대 70대로 보이는 남자 여자들이 일곱, 여덟 명 타고 있었습니다. 4월 중순인데도 그날따라 날씨가 쌀쌀했어요.

    출발 시간이 8시 30분경이었는데 그때는 27명 정도로 기억해요. 남자가 10명, 여자가 17명이었습니다. 총무가 출석 체크를 하고 생수 한 병씩 나눠주고, 간단한 규칙과 일상적인 설명을 하고 출발했습니다. 각양각색의 모르는 사람들이죠.

    뒷자석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어요. 깔끔하게 보이고 약간 세련돼 보이기도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옛날로 말하면 동네 건달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술이 약간 취한 것 같아 보이던데 목소리도 크고 해서 좀 불편했어요. 그때 벌어진 게 앞에서 말한 그 장면입니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씩씩거리더니 그냥 풀이 죽어 조용하더라고요. 내 옆의 그 사람은 나보고 이러데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버스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시끄럽게 구는 놈이라고요.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나는 그 말에 약간의 매력을 느꼈어요.

    남지 유채꽃밭, 일일 파트너와 걷다

    그 사람은 60대 초반인 걸로 아는데요, 코로나 끝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이런 관광을 즐긴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날은 나와 일일 파트너로 낙점이 되었습니다.

    그날 간 곳은 남지 낙동강변이었어요. 유채꽃 축제 행사로 관광객이 많이 왔더라고요.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많이 당황했습니다.

    같이 간 친구가 옆에서 훈수를 두데요.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하라고요. 거짓말도 좀 하고 여성 파트너를 리드하라는 겁니다. 재산은 좀 있고 퇴직해서 연금도 나온다고 말이죠.

    그래서 약간 부풀려서 이야기는 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내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이런 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는 여유로운 표정에 내가 좀 당황했던 것 같아요. 뭘 더 보태기도 전에 끝난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정을 보고 오히려 더 끌렸어요. 아, 차라리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낫겠구나 싶어서 바로 꼬리를 내렸습니다. 남자가 참 줏대없이 보였을 거예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어요. 선글라스는 왜 한 번도 벗지 않아요, 하고요. 그런데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나는 혼자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말하기 싫은 신체적 결함이 있는 건 아닌가 상상도 했어요.

    낙동강 벤치, 선글라스 뒤에 있던 것

    그러고는 같이 걷다가 낙동강을 바라보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거기서 지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약간 슬픈 모습을 봤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남편과 이혼하고, 하나 있는 딸을 시집보내고 난 뒤로 어느 날 우울증이 왔다고 하네요. 그런 데다가 왼쪽 눈이 자꾸 나빠져서 힘들었답니다.

    그런데 주변 지인이 안과에 가지 말고 한약을 계속 먹으면 나을 거라고 말해줘서, 그 말대로 계속 한약만 먹었대요. 그러다 자꾸만 더 악화되어서 거의 사물이 보이질 않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안과에 갔더니, 녹내장 등으로 시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회복이 어렵고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했다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화를 냈어요. 참 안타깝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되도록 살아왔느냐고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낼 화가 아닌데 그게 그냥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어요. 그래, 이렇게 된 건 할 수 없고, 아직 남은 인생이 많이 있으니 재밌게 생활하는 게 어떠냐고요.

    그날 우리는 모임에서 무단이탈을 했습니다. 관광버스를 타지 않고 남지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타고 왔어요.

    나란히 앉아서 오는데 그 사람은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왼쪽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회비 5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났어요. 유채꽃은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그 벤치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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