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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제사 갈등 실화, 아들이 '할아버지가 학생 때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했다

dobadalife 2026. 8. 14. 11:41

목차


    제삿날 저녁, 작은형님이 상을 발로 찼습니다. 과일상이 그대로 엎어졌어요. 그날 나는 제사상을 바꿔서 차렸습니다. 전도 안 부치고 생선도 나물도 없이 과일만 올렸고, 지방도 한자로 안 쓰고 한글로 아버지 이름, 어머니 이름을 적어 세워놨어요. 형님들한테는 미리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 우리 부부 마음대로 한 겁니다. 작년을 끝으로 부모님 제사는 그만 모시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 저녁이 있었습니다.

    제사 15년, 아버지 손잡고 따라다니던 아이가 모시게 됐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약 15년이 흘렀네요. 그 15년을 내가 제사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형님이 두 분 살아 계시고 여형제가 넷인 집안인데, 형님 두 분 모두 연세가 일흔여덟, 여든으로 나와는 다른 지방에 살고 계세요. 그리고 그 집안 자식은 딸만 둘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셨고, 자연히 제사도 내가 지내게 된 겁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잡고 형님과 함께 큰댁 제사에 참석했어요. 어릴 때는 제사에 가면 용돈도 받고 하니까 그게 좋았죠. 중고등학교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큰댁에 가는 것이 당연지사라 생각하고 갔던 것 같아요. 왜 가는지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가라니까 갔고, 가면 절을 했고, 절하고 나면 밥을 먹었죠.

    그렇게 따라다니던 아이가 나중에 상을 차리는 사람이 됐습니다. 제사에 오시는 쪽이 아니라 제사를 준비하는 쪽이 된 거죠. 형님들은 다른 날은 몰라도 제삿날은 거의 오셨어요. 그건 고마운 일입니다.

    과일만 올린 제삿상, 작은형님이 발로 찼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내가 부모님 제사를 13, 14년을 모시면서, 왜 이렇게 제사를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전 부치고 생선 굽고 나물 무치고 과일 괴고, 이런 준비가 갈수록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그 음식을 누가 먹는가, 이게 누구를 위한 상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집사람이 말을 꺼냈어요. 이제부터 제사상에 과일만 올리자고요. 나도 같은 마음이었으니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형님들에게 보고도 안 드리고 우리 마음대로 제사 상차림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방도 바꿨어요. 현고학생부군신위, 현비유인이씨신위 이런 글자 대신에 그냥 ㅇㅇㅇ 아버지, ㅇㅇㅇ 어머니라고 한글로 써서 올렸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 석 자, 어머니 이름 석 자를 쓴 거죠.

    그리고 형님이 오셨습니다. 여든 되신 큰형님은 이해를 해주셨어요. 그런데 성질이 괴팍한 작은형님께서 노발대발하시면서 상을 발로 차고 과일상을 엎어버렸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조카, 여형제는 놀라서 다 도망가고 난장판이 되었어요. 제삿날 저녁에 그렇게 됐습니다.

    형님은 나갔고, 나는 밤마다 잠 못 이뤘다

    작은형님은 딸만 둘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소리로, 앞으로 제사는 내가 모실 테니 그리 알아라 하시고는 나가버렸어요.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제 시대에 맞게 살자, 딸 있는 집안은 대가 끊겨서 자연히 제사가 없어질 건데 좀 간편하게 지내면 어떠냐고요. 그랬더니 작은형님은 아직 우리나라는 옛 제사 문화를 따라야 된다고 계속 주장하데요. 자기가 죽을 때까지는 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고, 고집스러운 말투로 다그치셨어요. 그걸 큰형님이 말려서 일단락이 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마음이 요즘도 어수선합니다. 부모님 산소에 자주 찾아가게 되고요. 밤이면 부모님이 자주 생각나서 잠 못 이룰 때도 있었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 생각이 자꾸 나요.

    아들이 '할아버지가 학생 때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 유일한 내 아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자식은 너뿐인데 제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난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약간은 당황했습니다.

    그럼 어쩔 거냐고 물었죠. 작은큰아버지 말씀대로, 1년에 한 번뿐인 제사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지내겠다고 하네요. 현고학생부군 이런 말들도 공부를 해서 알아보고 하겠다고요. 나는 약간 감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하는 말이, 자기도 아무것도 모를 때는 제삿날 지방에 쓰인 현고학생부군이 뭔지 몰랐답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학생 때 돌아가신 줄 알았대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웃었는데, 웃고 나니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따라다니면서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또 아들이 하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네요. 아버지는 그래도 행복하신 거예요, 아들이 있어서 제사도 지내 드리고요. 나는 외동딸이라서 자기 때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제사를 지낼지는 몰라도, 나와 성이 같은 남자가 없어 대가 끊기네요. 이러는 겁니다.

    얼마 후 나는 작은형님께 연락을 드리고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제사는 마음으로 잘 지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따지고 보면 아들이 없는 형님이 갑자기 불쌍해 보였어요. 그래서 아들이 든든한가 봅니다. 나이가 좀 들어가니까 조금씩 약해지네요. 현고학생부군처럼 평범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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