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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절친 이박사 떠난 후, 1400만원보다 아픈 것

dobadalife 2026. 8. 18. 21:04

목차


    은퇴한 옛 직장 동료와 금정산에 산행을 갔다가 하산하는 길이었어요. 그때 비보를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55년을 붙어 다닌 친구가 심장마비로 갔다는 겁니다. 나는 그길로 병원에 달려갔어요.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슬퍼서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우리가 이박사라고 부르던 친구였습니다.

    55년 친구 이박사, 금정산 하산길에 비보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어요. 약 55년 친구죠. 똑똑하고 영리해서 우리가 별명을 박사라고 불렀습니다. 일밖에 모르던 이박사가 공직생활 35년을 마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우리는 다른 어떤 친구보다 더 친했습니다. 그야말로 절친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멀리하고 가버린 겁니다.

    나름대로 아주 강인한 친구였는데 말이죠. 아, 이런 친구도 가는구나 하고 무상함을 느꼈어요. 병원에 달려가서 서 있는데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아주 미쳐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친구 이박사가 미워지더라고요.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1400만원 현금, 아무도 몰랐던 거래

    겉으로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박사가 부동산을 여럿 갖고 있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욕심 많은 이박사가 은퇴 후에 그렇게 모은 것이 여러 금융권 대출이고, 친척이며 지인들에게 수시로 돈을 차용한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우리 이박사가 참 재주도 좋구나, 부자는 이렇게 해야 부자가 되는구나 하고 어리숙한 나는 그저 어리숙하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얼마 후였습니다. 이박사와 나는 누구도 모르는 거래가 하나 있었어요.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다른 친구에게도 말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 아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사실 내 친구 이박사 살아있을 때, 대출이자며 기타 돈들이 갑자기 회전이 안 되니 한 2000만원만 빌려달라고 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1400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5만원권으로 바꿔서 빌려줬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아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냥 주면 어떡하냐고 다그칩니다. 그리고 계좌이체를 해주지 왜 그냥 현금으로 바꿔 줬냐고 뭐라고 하데요. 나는 당시 이박사가 그냥 현금으로 뽑아달라고 해서 해준 것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내가 이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 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나는 친구 아들을 조용한 카페로 불렀습니다. 옛날에 나와 지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빌려준 1400만원을 이야기했죠. 그랬더니 얼굴이 싹 변하는 모습으로, 저는 잘 모르니, 하고 나가버리더라고요.

    아, 나는 죽은 내 친구가 가엾다고 느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려고 했는데 심한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몰래 이박사 납골당에 하소연을 하러 갔답니다.

    그날 저녁에는 또 다른 친한 친구와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런 사실을 알려줬어요. 그 친구도 말하길, 저런 나쁜 놈이 있나, 당장 같이 가서 혼내자고 합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죽은 이박사 저승길에 넉넉한 노잣돈 줬다고 말할 거라고요.

    술자리 안주 싸던 이박사, 딸이 울면서 전화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서 늦게 집에 오니, 시집간 이박사 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펑펑 울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저런 나쁜 오빠 용서해 달라고 하네요. 자기가 갚아나가겠다고 하면서요.

    나는 그 아이에게 지 아버지 이야기를 해 줬어요. 너거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던 딸인데, 옛날에 우리랑 술 먹다가도 맛있는 안주가 남으면 꼭 싸가지고 가서 우리 딸내미 줘야지 하던 사람이라고요. 그 말이 그날따라 자꾸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모르겠고, 다음에 내가 아프든지 죽으면 기억해서 찾아달라고요. 그것 말고는 바랄 게 없다고 했어요.

    나는 그 친구 딸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가 겨우 잠을 잔 것 같습니다.

    그러고 6개월이 지났어요. 오늘 부모님 산소에 갔다가 불현듯 그 친구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른거립니다. 야, 인생무상하구나. 어이 이박사, 하늘에서 뭐 하노. 내 좀 챙겨줘라. 나이 드니까 지갑은 얇아지고 힘도 없네. 복 있으면 살짝 주고 가라. 그래도 우리 같이 있을 때가 봄날이었는데.

    고집스런 이박사 모습이 그립습니다. 1400만원은 이제 안 찾을 겁니다. 대신 저승에서 만나면 그때 술값은 니가 내라고 할 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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