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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서 조용히 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 두 장이 나를 보고 있데요. 살아있으니까 이런 경험도 하는 거야, 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직장 후배가 내 호주머니에 억지로 넣어준 봉투였어요. 나는 그 후배한테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말하러 갔던 겁니다. 일흔이 넘어서 어쩌다 보험설계사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보험설계사 시작, 15000원짜리 가입부터
친구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상조보험 팀장을 만나게 되었어요. 씩씩하고 활발하고 말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그날은 보험 이야기도 없었어요. 그런데 한 2, 3일 뒤에 내 친구랑 같이 만나자고 하데요. 내 친구는 이미 고객이었거든요.
거기서 상조보험을 가입하라고 설명하는데, 처음에는 나도 형편이 별로라 몇 번이나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매월 15000원짜리 보험이 있는데 1년은 자기가 납부할 테니 그다음은 해약해도 된다고 합니다. 배당받은 실적을 올리려면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데요. 그래서 억지로 가입을 했죠.
나이는 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너무 열정적이라 한때는 마음속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나는 그분을 정여사라고 불렀습니다. 한두 달은 커피며 가끔은 식사와 간단히 소주 한잔씩 하고 그랬어요.
그러더니 2개월쯤 지나서 이번에는 30000원짜리 크루즈 여행 상품을 가입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가입을 했어요. 그리고 두 달치 보험료를 내고 나서 정여사에게 해약을 하자고 했습니다. 지금은 벌이도 없고 30000원도 부담되고, 내가 언제 크루즈 여행 가겠나 싶어서 해약해 달라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아, 사장님 엄살 부린다고 회유를 하면서 이러는 겁니다. 그럼 사장님을 취직시켜 드릴 테니 우리 계속 끌고 가자고요. 사장님은 옛날에 직장 다닐 때 사무관리직으로도 있었고 그 나이에 컴퓨터도 할 줄 아니까, 취직하면 크루즈 보험은 계속 넣자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일자리인지 물었어요. 정여사가 어느 보험회사에 잘 아는 영업팀장이 있는데 이번에 보험상식 관련 교육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하데요. 그래서 들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보험 관련 지식들이었는데 들을 만했어요.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주부, 학생, 나처럼 은퇴한 사람도 보였어요. 마치고 나서 그 팀장과 면담을 했는데, 정여사를 잘 안다고 하데요. 그러더니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보험일을 배워보겠냐고 합니다.
3주 열공, 72살 여성은 포기했지만 나는 합격
호기심도 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하니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는, 3일 뒤에 다시 찾아가서 교육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교육 과정은 보험설계사로 한 3주가량 자체 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야 활동할 수 있었어요.
교육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공부하니까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습니다. 이번 코스는 30명가량 되는데 대부분 4, 50대 여성들이었어요. 특이한 것은 갓 퇴직한 남자 한 명, 70이 넘어 보이는 여성, 그리고 나. 이 세 사람이 제일 고령자였습니다.
특히 72살 된 그 여성은 교육하다가 잘 모르면 나에게 묻고 했어요. 그런데 그 여성은 일주일에 2, 3일은 결석을 했습니다. 나는 결석도 한 번 안 하고 열공했어요. 그리고 3주 후 시험에 나는 합격했습니다. 그 여성은 시험을 포기하고 그 뒤로 안 보였어요.
그렇게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습니다. 한 75%는 합격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좀 더 디테일한 교육을 보름가량 더 받고 실전에 뛰어들었죠.
첫 실적, 나와 아내로 위기 모면
이런 계통에 무지하다 보니 첫 고객 잡기가 감감했어요. 처음에는 한 달에 실적을 최소 한두 건이나 기본적인 금액을 맞춰야 수당을 만져볼 수 있는데, 아, 난감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나와 내 배우자를 선택해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어요. 첫 고객이 나였던 겁니다.
집에 돌아와 누우면 친구, 옛 직장 동료, 사돈 등 오만 사람들을 떠올리며 어서 한 건 해야지 하고 잠들어 버립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사람 이름만 세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아들한테 갔죠. 아들은 걱정을 하면서 이런 일은 아무나 못 한다고 처음에는 거부하더니, 결국은 적은 금액으로 억지로 가입을 했어요. 그러면서 절대로 며느리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네요. 만일 발각되면 해약해야 된다고요. 참, 어렵네요.
후배 호주머니 10만원, 친척집 얼굴색 변하던 날
한날은 친한 후배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서 술만 진탕 먹고 왔던 기억이 나네요. 보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잘나가는, 옛날에 아주 친했던 직장 후배를 찾아가서 보험 가입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내 모습을 그 후배가 봤어요. 어데 할 게 없어 이런 일 하는교, 하면서 불쌍하게 보는 그 두 눈을 봤습니다.
보험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가려는데, 봉투를 내 호주머니에 억지로 넣어주면서 이러데요. 보험 관련해서 이런 선후배가 많이 온다고, 다음에 꼭 들겠다고요. 그래서 허무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봉투가 앞에서 말한 그 봉투예요.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하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과일상점으로 갔습니다. 10만원 중에 5만원을 꺼내서 과일을 사 들고, 잘 만나지도 않던 친척집을 용감하게 방문했어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줬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 자식들 자랑,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내가 보험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랬더니 얼굴색이 약간 변하더니, 그때부터 엄살을 부리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겁니다. 한 3개월 뒤에 보험이 자동 만기가 되는 게 있는데 그때 다시 연락하자고요.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어요.
그 집을 나오면서 나는 후배가 내 호주머니에 봉투를 넣던 그 손이 생각났습니다. 그 10만원 중에 5만원은 과일이 되어 저 집 상 위에 놓여 있었어요. 3개월 뒤에 연락하자는 말은 나도 압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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