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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도 알아봤지만 죽을 때까지 빚을 지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비참했다.”
내 나이 70살이다. 말년에 아들과 함께 가게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내 명의로 사업자를 내고 시작했다. 잘되면 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도 마지막으로 뭔가 하나 해냈다는 생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진 돈만으로는 부족해서 대출도 만들었다. 아내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함께 시작한 가게가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월세도 두 번이나 밀렸다. 그래도 문을 닫지 못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끝이 어떻게 되든 내가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프랜차이즈 창업, 매출이 있어도 돈이 남지 않았다
지금 가게 하루 매출은 대략 7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다. 이 숫자만 들으면 장사가 그렇게 안되는 것도 아닌데 왜 힘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에 이 정도 팔리면 월세 내고 사람 월급 주고 그래도 어떻게든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장사를 직접 해보니 매출과 내 손에 남는 돈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월세가 한 달에 200만원이다. 대출 원금과 이자가 거의 300만원 나가고 인건비도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약 350만원 정도가 든다. 프랜차이즈 로열티가 한 달 35만원, 회계사무소 비용 10만원, 정수기 비용도 있고 관리비와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도 나온다. 여기에 재료비가 들어가고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같은 배달 주문에서 나가는 비용도 있다.
나는 나름 계산은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장사를 해보니 정말 도대체 돈이 어디에서 그렇게 빠져나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하루 장사하고 돈이 들어왔다 싶으면 바로 재료값이 나가고, 며칠 있으면 또 다른 비용을 내야 한다. 한 달 30일 동안 매일 돈이 들어오고 매일 돈이 나간다. 장부를 들여다보고 또 봐도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을 보면 허탈하다.
아내도 거의 2년 동안 제대로 된 돈 한번 받지 못하고 가게를 도왔다. 가족 가게라고 월급 챙길 생각도 제대로 못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최근에는 아내도 쉬고 있다. 잘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내 몸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들까지 같이 힘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일 마음이 아프다.
한 달 5만원이라던 전화 마케팅, 끝내려고 하니 600만원이었다
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홍보해준다는 전화가 정말 많이 왔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디에서 번호를 알았는지 가게 홍보를 해주겠다, 블로그를 만들어주겠다, 매출을 올려주겠다며 계속 연락이 온다. 나도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라 그런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했다.
한 달에 5만원에서 6만원 정도면 된다고 했다. 그 돈을 내면 그 이상 매출이 나올 수 있다고 했고 필요 없으면 해지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들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계약서도 받았지만 가게 문을 막 열었을 때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만원짜리 광고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2년 계약기간이 지나고 나서 자동갱신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만하겠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계약을 끝내려면 그동안 할인받았다는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하고 약 6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멘탈이 나갔다. 안 그래도 가게에 현금이 부족해서 하루 장사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인데 600만원이라는 돈이 또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할인받았는지, 그동안 내가 받은 홍보가 실제로 장사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는데 돈을 그렇게 내야 한다니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네이버 지식인에도 물어보고 소비자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에도 전화해봤다. 그런데 여기로 전화해보라고 해서 전화하면 또 다른 곳으로 물어보라고 했다. 전화번호를 하나 받고 또 하나 받고, 계속 뺑뺑 도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하나였다. 앞으로 전화로 들어오는 마케팅이나 광고 계약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자리에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계약서도 돈이 적다고 대충 볼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인생공부를 70살이 되어서 또 했다.
가게에 나가지 못하는 아버지, 회사 끝나면 달려가는 아들
나는 지금 가게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몸도 많이 안 좋아졌고 지금은 요양하는 마음으로 양산에 있다. 가게는 부산에 있다. 마음만 생각하면 나도 가서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마음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예전에 가게에 나가 일을 도울 때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눈이 잘 안 보이고 가게 안에서는 환풍기 소리가 계속 난다. 손님이 무슨 말을 하는데 한 번에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다. 주문을 받을 때도 실수가 생겼다. 요즘 배달 장사는 노트북과 배달 플랫폼을 계속 봐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빠르게 다루지 못했다.
뭔가 하나를 빼먹기도 하고 주문을 잘못 보기도 했다. 오로지 내 실수 때문에 환불해준 것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있었다. 한두 번이라고 하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한 건도 너무 아깝다. 장사가 잘되는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하루하루 돈이 부족할 때는 환불 하나에도 마음이 철렁한다.
전화가 오면 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었다. 옆에서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다시 처리해주는 모습을 보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내가 도와주려고 나온 건데 오히려 일을 하나 더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아내가 결국 이야기했다. 가게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게 낫겠다고. 늙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요즘 장사 방식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이 버티고 있다. 아들도 자기 회사 일이 있다. 회사 일을 마치면 바로 가게로 가서 저녁 일을 돕고, 주말에도 시간을 쪼개서 일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잘 때가 많다. 정직원을 마음 편하게 쓸 형편도 아니라 파트타임 알바생을 쓰면서 점심 장사, 저녁 장사, 주말 장사를 나눠서 버티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그만하자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직접 가게에서 일을 많이 해주지는 못해도 전화라도 한다. 밥은 먹었는지 묻고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묻는다.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파산도 알아봤다, 그래도 오늘 문을 닫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힘드니까 가게를 그냥 접으면 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계산을 해보면 그것도 쉽지 않다. 가게 문을 닫는 순간 매출은 바로 끊긴다. 그런데 빚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생긴 비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보증금도 3천만원이 묶여 있다. 월세는 이미 두 번을 내지 못했다. 임대인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임대인도 주변 상황과 우리 가게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지 아직 크게 뭐라고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하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밀린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파산하는 방법까지 알아봤다. 살면서 내가 파산이라는 단어를 직접 찾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죽을 때까지 빚을 지고 살다가 그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비참했다. 내 나이에 다시 돈을 벌어서 이 모든 빚을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겁이 난다.
올여름은 특히 너무 덥다. 날이 더워지면서 매출도 많이 줄었다. 장사는 현금이 계속 돌아야 한다. 오늘 들어온 돈으로 내일 필요한 것을 사고 또 며칠 뒤 나갈 돈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매출이 줄어들면 그 흐름이 바로 막힌다. 하나가 밀리기 시작하면 그다음 돈까지 연달아 막힌다. 그래서 하루 매출 숫자에 사람 마음이 같이 움직인다.
그래도 아직 기본 장사는 하고 있다. 손님이 완전히 끊긴 가게는 아니다. 아들도 그래서 조금만 더 해보자고 한다. 날씨가 조금 풀리면 다시 매출이 올라올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어떻게든 죽기살기로 해보겠다고 한다.
아들이 그렇게까지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나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가게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도 이 가게는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이고 우리 가족이 함께 버틴 시간도 있다.
“아들이 죽기살기로 해보잔다. 그래서 응원이라도 하고 있다.”
내일도 나는 아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밥은 먹었는지 묻고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물어볼 것이다.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정도라면 그것이라도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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