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 후배에게 보험 하나 들어달라는 말을 하러 갔습니다. 막상 얼굴을 보고 앉으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보험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나오려는데 후배가 내 호주머니에 봉투를 억지로 넣었습니다.밖으로 나와 조용히 열어보니 5만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나는 보험을 팔러 갔다가 보험 대신 10만원을 받아 나온 사람이 됐습니다. 일흔이 넘어서 보험설계사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던 때의 이야기입니다.월 1만5000원짜리 가입에서 시작된 보험설계사처음부터 보험설계사가 되려고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상조 관련 일을 한다는 한 팀장을 만나면서 시작됐습니다. 씩씩하고 말도 잘하고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 월 1만5000원 정도인..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 군대를 다시 한번 더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나이 60 넘어서 하루 10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어 보니까,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게 낫지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소리를 하면서도 3번을 도전했어요.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통증으로 병원에 5일을 누웠고, 남의 사무실에서 보조원 20일을 하고 나서야 겨우 붙었습니다. 그 3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공인중개사 도전, 10년에 자격증 7~8개 딴 이유 나는 70대입니다. 퇴직하고 60살 이후에 자격증을 수시로 공부해서 땄어요. 청각관리사, 보험설계사, 타로상담사 같은 자질구레한 것부터 공인중개사, 요양보호사,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삭기까지요. 10년에 7, 8..
66세에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 들어갔습니다. 한 반에 40~50명 정도 있었는데 남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습니다.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땄습니다. 이제 나도 어디든 소개받아 일을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처음 소개받은 80대 환자를 하루 돌보고 난 다음 날 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환자분이 50대 정도의 여성 요양보호사를 원하십니다.”내 첫 요양보호사 일은 그렇게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그래도 자격증을 따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일은 그 교체 연락보다 교육 중 현장실습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40~50명 교실에서 남자는 두 명이었다당시 나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새로 취직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무엇이라도 하나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요양보호사 교..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사게 된 것입니다. 25평 정도 되는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 약 4만 평의 야산과 주변 전답 약 2천 평이 있었습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원이었습니다.살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었고 잠시 중개 일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도 당시 투잡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나는 그때 그 가격이면 괜찮다고 판단했습니다. 2~3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다시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부동산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4만 평 야산보다 무거웠던 3억 5천만원 대..
타로 자격증까지 땄으니 가게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가게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내 나이 70살이다. 은퇴하고 이것저것 배워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중 하나가 타로였다.처음에는 재미로 배웠다. 카드를 펼쳐놓고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고, 배우다 보니 자격증까지 땄다.자격증이 생기니 생각이 한 단계 더 나갔다.“이거 가게 하나 차려서 해볼까.”자격증까지 따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길을 다니다 타로 가게가 보이면 예전과 다르게 보였다.나도 저 안에 앉아 사람 이야기를 듣고 카드를 봐주면서 지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정해진 출근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자격증도 있으니 작은 가게라도 하나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생각으로는 괜찮아 보였다.권리금 이야기를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