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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보고 운전면허를 딴 친구가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가장 놀라고 감동했던 사람은 국민학교 동창 철수입니다.
철수는 처음 운전면허를 딴 것도 아주 늦었습니다.
69살이었습니다.
6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가 69살이 되어서야 처음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배수로에 차를 빠뜨리기도 했고, 과태료 고지서를 여러 장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음주운전으로 면허까지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거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시험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또 면허를 땄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친구의 운전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69살까지 운전을 하지 않았던 이유
철수는 국민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60년지기 친구입니다.
69살이 되도록 운전면허가 없다고 다른 친구들이 가끔 놀렸습니다.
“야, 니는 인간문화재 감이다.”
철수는 덩치에 비해 새침한 구석도 있지만 음주가무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입니다.
그런 철수가 어느 날 가족에게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운전면허 시험을 봤습니다.
필기시험을 보고 도로주행시험까지 치렀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면허를 따버렸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니가 왜 갑자기 운전면허를 딸 생각을 했노?”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철수가 20대였을 때 사촌형이 몰던 1톤 트럭에 발등을 다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뼈에 금이 가는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약 6개월 동안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운전 안 한다.”
그리고 정말 수십 년 동안 운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던 모양입니다.
시간도 많아지고 무료함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이 차를 몰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합니다.
평생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도 어느 순간 해보고 싶어집니다.
철수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던 것 같습니다.

69살에 처음 운전대를 잡은 친구
면허를 따자마자 철수는 SUV 한 대를 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이제 실전 운전 좀 가르쳐도.”
전문 운전학원 강사도 아닌 내가 늙으막에 친구 운전조교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일요일마다 한적한 시외로 나갔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철수의 손이 벌벌 떨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신기합니다.
며칠 연습하더니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한번은 고속도로도 달려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 고향마을까지 직접 운전해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조금 걱정됐지만 같이 차를 탔습니다.
차 안에서 철수는 억지로 흥을 내며 콧노래까지 불렀습니다.
“친구야, 우리 마이 살았다 아이가.”
나는 웃으면서도 옆자리에서 약간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고향 시골길까지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차 한쪽 바퀴가 논두렁 옆 배수로에 빠져버렸습니다.
나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고 빙신아, 브레이크 엿 바꿔 먹었나. 왜 브레이크는 안 밟고 뭐했노.”
철수는 덩치는 큰데 선생님한테 혼나는 학생처럼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도 웃음이 나고 그립습니다.
나는 철수를 차에 두고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사태를 수습한 뒤에는 내가 직접 운전해서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서 배까지 쫄쫄 굶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철수 동네 돼지갈비집에 들어가 둘이 고기를 정신없이 먹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면허를 땄다고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철수는 운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꼴로 차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이제는 혼자 운전대를 맡겨도 되겠다 싶을 때가 됐습니다.
마지막 수업으로 부산에서 대구 쪽 고속도로까지 철수가 직접 운전했습니다.
그날로 내 운전조교 생활도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옆에서 가르쳐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더군요.
운전면허를 땄다는 것과 실제 도로에서 익숙하게 운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핸들 조작이나 브레이크 같은 운전 기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아 계속 지켜보니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한속도를 확인하는 것, 표지판을 보는 것,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 그리고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않는 것까지 모두 실전 운전의 일부였습니다.
면허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운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실제 운전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철수에게는 아직 더 큰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과태료 고지서가 네 장이나 날아왔다
마지막 수업을 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철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부터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야 친구야, 내 이 차 팔아버릴끼다. 니하고 내하고 경찰서 가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네 장이나 왔다는 겁니다.
내 기억으로는 네 건을 합쳐 38만 원 정도였습니다.
노인보호구역도 있었고 스쿨존도 있었고 일반도로에서 제한속도를 넘긴 것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옆에서 단속카메라나 제한속도를 좀 더 알려줬어야 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면허를 땄다면 이제 도로의 표지판과 제한속도를 확인하고 지키는 것은 운전자인 본인의 책임입니다.
나는 철수에게 말했습니다.
“운전조교 선생님한테 수업료 줬다고 생각하고 마음 비워라.”
그렇게 한번 웃고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더 큰 일이 생겼습니다.
결국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어느 날 저녁 철수가 집안 모임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대리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고 나중에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집 근처 상가 주차장에서 차를 대다가 옆에 주차된 승용차를 들이받았고 담벼락까지 파손했습니다.
다행히 사람이 다친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철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09%였다고 합니다.
결국 운전면허가 취소됐고 벌금도 약 600만 원을 냈다고 했습니다.
대리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음주운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술을 마셨다면 운전대를 잡지 말았어야 합니다.
친구라서 더 심하게 말했습니다.
면허를 다시 딴다고 해도 그때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철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뒤 철수는 차를 아는 동생에게 헐값에 팔았습니다.
무면허가 된 철수는 한동안 풀이 죽어 지냈습니다.
“나는 이제 운전 안 하니까 술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그 후 약 2년 동안은 내 차를 타고 함께 놀러 다녔습니다.
시외로 나갈 때면 옛날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나는 이제 운전 안 하니까 술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
그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나는 철수가 이제 운전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칠순을 넘기고 다시 시험장에 갔다
철수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시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한 것입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다시 보고 결국 합격했습니다.
나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잃었던 잘못이 그걸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험장에 가서 면허를 따낸 집념만큼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철수에게 말했습니다.
“니 참 대단하다.”
철수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 나이에 맞는다면서 그랜저를 한 대 샀습니다.
문제는 집입니다.
마누라는 차를 당장 팔아 없애라고 하고, 철수는 차를 지키겠다고 매일 도망 다니기 바쁩니다.
친구인 내가 보기에도 웃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철수가 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싶어 했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동차 한 대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내가 아직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특히 운전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니까요.
다시 내 옆에서 그랜저 키를 들고 있다
며칠 전 철수가 또 나에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이번에는 좀 멀리 가자. 강원도 3박 4일 어떻노?”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원도 3박 4일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 손을 벌벌 떨던 친구.
논두렁 배수로에 바퀴를 빠뜨리고 나에게 혼나던 친구.
과태료 고지서를 받고 차를 팔겠다고 난리 치던 친구.
한 번 크게 잘못하고 운전대를 놓았던 친구.
그 친구가 이제 다시 내 옆에서 그랜저 키를 들고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예전보다 잔소리를 좀 더 할 생각입니다.
철수야, 강원도 가는 것은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천히 가자.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다.
우리 나이에 강원도까지 하루 만에 갈 이유도 없습니다.
중간중간 쉬고, 경치도 보고, 밥도 먹고, 친구끼리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천천히 가자.
69살에 처음 시작했던 운전이 몇 번의 실패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칠순을 넘긴 지금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시작할 때는 젊었을 때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은 철수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강원도 여행에서는 제발 배수로만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철수야, 천천히 가자.
우리 아직 갈 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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