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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는데 걱정이 먼저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탕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풀리고 목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편안하려고 들어간 곳이니 머릿속도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
그런데 은퇴하고, 특히 70살이 되고부터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예전 같은 편안함이 잘 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만 달라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평소에는 그냥 지나갔던 생각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들어왔다.
생각한다고 답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른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지도 않았다.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목욕탕에서까지 이러나 싶었다. 70살이 되고 보니 몸을 쉬게 한다고 마음까지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도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것은 앞으로 경제적으로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을 수 있다. 당장 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이 길어진다면 지금처럼 별문제 없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건강에 대한 걱정도 가끔 따라온다. 나는 13년 전에 위와 대장 쪽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의사도 거의 완쾌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나도 그 병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밥을 먹고 동네를 걷고 목욕탕에 다니는 평범한 생활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래도 한 번 큰 수술을 받은 기억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가만히 있는 순간에는 예전의 병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어디가 특별히 아파서 하는 걱정은 아니다. 거의 완쾌되었다고 들었어도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지는 내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다.
결국 내가 걱정하는 것은 돈 하나도 아니고 건강 하나도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을 경제적으로나 건강으로나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했던 문제들이 70살이 되고 나서는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진다.
은퇴 10년, 열정보다 마음 편한 게 최고
나는 부산시설관리공단에서 은퇴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언가를 해보려는 열정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지금은 내가 마음먹지 않으면 굳이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무엇에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생각으로는 멋지고 좋아 보인다. 나도 저런 것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은퇴 전에는 열심히 움직이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이렇게 별다른 도전 없이 지내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도 같이 든다.
70살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욕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 무엇을 새로 해볼까 생각한다. 다만 예전처럼 생각이 들었다고 바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지금의 생활을 흔들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지, 시작한 뒤에도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도전하는 모습은 멋있어 보여도 내가 직접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타로 자격증, 권리금 듣고 바로 접은 이유
나는 타로 자격증이 있다. 아마 내가 이런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거창하게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은퇴하고 심심하기도 했고 타로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배우다 보니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타로를 봐주는 가게들이 보인다. 나도 자격증이 있으니 타로 가게를 한번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카드를 봐주면서 지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취미로 하던 일을 가게에서 해보는 모습을 생각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게를 차리려면 권리금도 필요하고 돈이 제법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접었다. 우아, 혼자 재미로 하는 것과 가게를 얻어 장사로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구나 싶었다. 돈을 크게 들여서까지 시작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타로를 보거나 친구와 지인들에게 재미로 봐주고 있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봐줬던 내용과 비슷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연락해 신기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번은 저녁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전에 타로를 봤던 것이 생각났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 친구가 내게 물어본 것은 동창회 모임에 가입할까 말까 하는 문제였다. 카드는 가입하는 쪽으로 나왔고 나는 가입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줬다.
친구는 실제로 동창회에 가입했고 처음 한두 번은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싫증이 났는지 지금은 그 모임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가입하는 선택은 했지만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타로의 범위를 다시 생각해봤다. 타로점은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이지, 1년 이후처럼 먼 미래까지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 환경도 달라지고 사람의 마음도 수시로 변한다. 가입하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모임을 오랫동안 좋아할 것인지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타로 가게를 차리는 일은 접었지만 타로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가게가 없어도 친구에게 카드를 봐주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남아 있다. 지금 내게는 큰돈을 들여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보다 부담 없이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두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새벽 4시, 나만의 하루 시작 루틴
요즘은 새벽 4시쯤이면 그냥 눈이 떠진다. 알람을 맞춰놓고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뜨면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방송을 틀어놓는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뒤에는 텔레비전을 켠다. 뉴스를 보기도 하고 오락물을 보기도 하고 스포츠도 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에 챙겨 먹기보다 배가 고플 때 대충 먹는 날이 많다.
밥을 먹고 나서는 동네를 한 바퀴 걷기도 하고 목욕탕에도 간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된다. 저녁에 배가 출출하면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하루가 흘러간다.
겉으로 보면 매일 비슷한 하루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하루가 별다른 일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처럼 정해진 일을 하러 나가지도 않고, 새롭게 도전하겠다고 크게 움직이는 일도 많지 않다.
그래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음악을 틀고 따뜻한 물을 마시는 시간은 내가 직접 시작하는 시간이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큰 도전은 생각만큼 쉽게 실행하지 못해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내 하루를 여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다.
내일 새벽에도 눈이 떠지면 음악방송을 틀 생각이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천천히 몸을 풀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게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가장 현실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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