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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도전

4억 5천만 원 시골집이 10개월째 팔리지 않았다, 66세에 굴삭기를 배웠다

dobadalife 2026. 8. 7. 19:37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사게 된 것입니다. 25평 정도 되는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 약 4만 평의 야산과 주변 전답 약 2천 평이 있었습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원이었습니다.

살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었고 잠시 중개 일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도 당시 투잡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 가격이면 괜찮다고 판단했습니다. 2~3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다시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부동산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4만 평 야산보다 무거웠던 3억 5천만원 대출

집과 땅을 살 때 지역농협에서 약 3억 5천만원을 담보대출로 받았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이자가 지금처럼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약 2.8% 정도였던 금리가 나중에는 약 5%까지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이자만 내는 것이 아니라 원금도 함께 갚아야 했습니다.

국민연금을 받으면 생활비보다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내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에는 도시에 사는 아들이 조금씩 보태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부동산 사무실도 경기가 좋지 않아 수입이 줄었습니다. 우리도 돈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서 가끔 은행 연체가 생겼습니다.

결국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본전이라도 받고 다시 팔자.”

읍내 주변 부동산에 집과 땅을 내놓았습니다. 더 받아보겠다는 욕심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산 금액 정도만 받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매물로 내놓고 약 10개월이 지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살 때에는 내가 원하면 나중에 팔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매도자가 되고 나니 전화 한 통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내는 목욕탕 카운터로, 나는 풀밭으로 갔다

아내의 일터, 목욕탕 입구 장면

집이 팔릴 때까지는 어떻게든 대출을 버텨야 했습니다. 아내는 읍내 목욕탕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틈틈이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채소부터 심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채소를 심는 것보다 땅을 고르고 계속 올라오는 풀을 베는 일이 더 힘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시골집을 볼 때에는 땅이 넓으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살아보니 넓은 땅은 가만히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손을 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풀을 베고 땅을 고르다 보니 장비 없이는 제대로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집을 살 때에는 내가 중장비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은 팔리지 않았고 나는 그 땅에서 계속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경남 김해에 있는 중장비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66세였습니다.

66세에 청바지 입고 중장비 학원에 갔다

학원 한 반에는 수강생이 약 30명 있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젊어 보였습니다. 내 눈에는 20대부터 50대 정도였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나도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청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젊은 수강생들과 선생님 사이에 섞여 장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은 뒤 지금 공식 명칭으로는 굴착기운전기능사인 시험의 실기에 도전했습니다. 나는 평소 굴삭기라고 불렀습니다.

그 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습니다.

한 번에 붙고 나니 지게차도 쉽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게차는 달랐습니다.

지게차 2초 부족, 세 번째에는 30초가 남았다

굴착기 실기에 합격하고 일주일쯤 뒤 지게차 실기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습니다. 다시 일주일쯤 뒤 두 번째 시험을 봤습니다.

이번에는 통과해야 하는 시간에서 단 2초가 부족했습니다.

전진하면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때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겨우 2초 때문에 또 떨어졌다는 생각에 정말 억울했습니다.

그냥 그만두기는 싫었습니다. 지인에게 부탁해 밤늦게까지 지게차를 다시 연습했습니다. 동작 순서를 계속 되풀이하고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일주일쯤 뒤 세 번째 시험을 봤습니다.

이번에는 제한시간보다 약 30초를 남기고 합격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2초가 부족했는데 세 번째에는 30초가 남았습니다.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지난번 그 2초를 결국 넘어섰다는 것이 더 기분 좋았습니다.

물론 자격증 하나를 땄다고 3억 5천만원 대출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팔리지 않던 집이 갑자기 팔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집이 팔리지 않아 꼼짝없이 그곳에서 버티던 시간에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늘어났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전원생활과 실제 생활은 달랐다

내 시골생활의 기억에는 예쁜 전원주택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3억 5천만원 대출, 국민연금에서 먼저 빠져나가던 원금과 이자, 10개월 동안 조용했던 부동산 전화, 목욕탕 카운터로 출근했던 아내가 같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중장비 학원에 갔던 66세의 나도 남아 있습니다.

나는 시골에 들어가기 전에는 넓은 땅과 조용한 집을 먼저 봤습니다. 직접 살아보고 나서는 그 땅을 관리하는 일과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을 먼저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시골생활이 어땠냐고 물으면 전원생활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대신 판단해주지는 못합니다.

“나는 팔리지 않는 집에서 버티다가 66세에 굴삭기부터 배우게 됐다.”

그게 내가 직접 겪은 시골생활입니다.

※ 이 글의 매입금액·대출금액·금리와 당시 시점은 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한 개인 경험입니다. 부동산 매입이나 대출을 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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