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시골집 대출 3억 5천만 원, 팔리지 않는 집에서 중장비를 배웠습니다

2026. 10. 22. 03:03ㆍ은퇴 후 도전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조용한 전원주택에서 농사도 조금 지으며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 들어가 보니 생각했던 생활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가 매입한 집과 땅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그중 3억 5천만 원은 대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2~3년 정도 보유하다가 다시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을 매물로 내놓은 뒤 약 10개월 동안 매수자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사이 대출이자는 올랐고, 아내는 목욕탕 카운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넓은 땅을 관리하려고 농사일을 배우다가 결국 중장비 학원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66세였습니다.

편안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들어간 시골에서, 나는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4억 5천만 원에 매입한 시골집과 넓은 땅

은퇴 후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매입했습니다.

약 25평짜리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가 있었고, 약 4만 평의 야산과 주변 전답 약 2천 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잠시 중개 업무를 해본 경험도 있었습니다.

아들도 그 무렵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 가격이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넓은 땅과 집을 가지고 있다가 2~3년 뒤에 팔면 되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중요한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동산은 내가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어도, 팔고 싶을 때 반드시 팔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집과 땅의 면적, 매입가격은 꼼꼼히 살폈지만 실제로 생활하면서 감당해야 할 비용과 노동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부동산을 조금 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3억 5천만 원 대출, 금리가 오르자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집과 땅을 매입하면서 지역농협에서 약 3억 5천만 원을 담보대출로 받았습니다.

처음 대출금리는 약 2.8%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리는 약 5%까지 올랐습니다.

3억 5천만 원에 연 2.8%를 적용하면 단순 계산으로 연간 이자가 약 980만 원입니다. 연 5%라면 약 1,750만 원이 됩니다.

실제 납부액은 대출 잔액과 상환 조건에 따라 달랐지만, 금리가 오를수록 부담이 커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습니다.

더구나 이자만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금도 함께 갚아야 했습니다.

국민연금이 들어오면 생활비를 쓰기 전에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돈이 부족할 때는 도시에 사는 아들이 조금씩 보태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부동산 사무실도 경기가 좋지 않아 수입이 줄었습니다.

우리 역시 대출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상환이 연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넓은 땅과 집을 가진 것이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땅보다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본전만 받고 팔려 했지만 10개월 동안 매수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집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본전이라도 받고 다시 팔자.”

나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읍내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집과 땅을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매입했던 금액 정도만 받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 10개월이 흘렀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대출 부담은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가격이면 충분히 팔릴 텐데.'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과 실제 매수자가 지불하려는 가격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전만 받고 팔겠다는 생각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내 부동산을 원하는 시기에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을 사기 전에 매도 가능성까지 생각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내는 목욕탕 카운터로, 나는 농사일을 배우러 갔습니다

집이 팔리지 않는 동안에도 생활은 이어가야 했습니다.

아내는 읍내 목욕탕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농사일을 배우며 땅을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채소를 조금 심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농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채소를 심기 전에 땅을 고르고, 자라나는 풀을 베고, 주변을 계속 관리해야 했습니다.

특히 넓은 땅을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도시에 살 때는 땅이 넓으면 무조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직접 살아보니 넓은 땅은 바라보기만 하는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손을 대야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풀을 베고 땅을 정리하다 보니 장비를 다룰 줄 알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장비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과 땅을 살 때는 내가 중장비 학원에 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66세에 청바지를 입고 중장비 학원에 갔습니다

경남 김해에 있는 중장비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66세였습니다.

학원 한 반에는 약 30명의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젊어 보였습니다. 내 눈에는 20대부터 50대 정도의 사람들이 많았고,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 청바지를 입고 학원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청바지 하나 입는다고 나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젊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도 잘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장비를 다루는 일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재미도 생겼습니다.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은 뒤 굴착기 실기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한 번에 합격이었습니다.

66세에 새로운 장비를 배우고 첫 시험에서 합격하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지게차도 쉽게 합격하겠구나.'

하지만 지게차 시험은 내 예상과 달랐습니다.

지게차 실기시험, 단 2초 때문에 떨어졌습니다

굴착기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일주일쯤 뒤 지게차 실기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떨어졌습니다.

아쉬웠지만 다시 도전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거의 합격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제한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부족했던 시간은 단 2초였습니다.

전진하면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순간에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무척 아쉬웠습니다.

'겨우 2초라니.'

그 짧은 시간 때문에 또 떨어졌다는 사실이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인에게 부탁해 밤늦게까지 지게차를 연습했습니다.

작업 순서를 반복하고, 머뭇거리던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제한시간을 약 30초 남기고 합격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2초가 부족했는데, 세 번째 시험에서는 30초가 남았습니다.

합격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부족했던 부분을 연습으로 고쳐냈다는 점이 더 뿌듯했습니다.

물론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대출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팔리지 않던 집에 갑자기 매수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시기에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66세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패한 뒤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은퇴 후 전원생활, 집값보다 먼저 생각했어야 할 것들

그 일을 겪고 나니 시골집을 살 때 놓쳤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집의 크기와 땅의 면적, 매매가격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과 노동은 충분히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볼 것 같습니다.

첫째는 대출 부담입니다.

처음 금리로 대출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금리가 오르거나 수입이 줄어도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지 따져봤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땅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체력입니다.

넓은 땅이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셋째는 집과 땅이 원하는 시기에 팔리지 않을 가능성입니다.

매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그동안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책에서 배운 지식보다 직접 겪으면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들입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도 내 재산을 판단할 때는 기대와 욕심이 앞설 수 있었습니다.

괜찮은 가격에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팔리지 않는 집에서 배운 또 하나의 인생 공부

지금은 양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 매입했던 시골집과 땅도 나중에는 팔렸습니다.

하지만 매수자를 기다리던 약 10개월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매달 대출금을 갚아야 했던 걱정, 목욕탕 카운터로 출근하던 아내의 모습, 풀을 베고 땅을 관리하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중장비 학원에 다니던 66세의 내 모습도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편안한 전원생활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적 부담과 새로운 일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시골에서 지낸 시간이 모두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농사일을 배웠고, 굴착기와 지게차 시험에도 도전했습니다.

특히 지게차 실기시험에서 2초가 부족해 떨어졌던 기억은 오래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2초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연습하고 세 번째 시험에 합격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험 결과는 바꿀 수 없지만,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내 행동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골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이 언제 팔릴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은퇴 후 시골생활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쉽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팔리지 않는 시골집에서 버티다가 66세에 굴착기와 지게차를 배웠어.”

편안하게 살고 싶어 들어간 시골에서 오히려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대출 걱정은 시간이 지나며 끝났지만, 2초의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했던 기억은 지금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 이 글은 은퇴 후 시골집과 토지를 매입하고 생활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면적, 금액, 금리와 기간은 당시 기억에 따른 대략적인 수치입니다. 특정 부동산 매입이나 대출을 권유하는 글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