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돌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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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엔젤과 함께한 1년, 이별 후 일주일을 앓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인연을 만들지 않겠다.”엔젤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던 날,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했습니다.그런데 지금도 길에서 작은 푸들을 보면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엔젤 같은 강아지가 다시 내게 온다면, 나는 정말 외면할 수 있을까요.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한때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일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개는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그런 내가 훗날 강아지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밤새 찾아다니다가 파출소까지 찾아갔습니다.아들이 데려온 첫 강아지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입니다.옆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부러웠는지 아들은 우리도 한 마리만 키우자며 졸랐습니다. 결국 흰 털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처음에는 아들이 밥도 주고 함께 놀았습니다. 하지만 보름..
2026.11.06 -
과일만 올린 제사상, 작은형님이 상을 엎으셨습니다
제삿날 저녁, 작은형님이 제사상을 발로 차셨습니다. 상 위에 올려놓은 과일이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그날 우리 부부는 평소와 다르게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전도 부치지 않고 생선이나 나물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상에는 과일만 올렸고, 지방에는 한자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한글로 적었습니다.형님들께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우리 부부끼리 결정한 일이었습니다.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그날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는 예전처럼 격식을 갖춘 제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후에는 과일을 간소하게 올리고 가족이 모여 부모님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일흔이 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부모님을 기리는 마음은 같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형제 사이에 큰 다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아버지..
2026.10.25 -
치매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아내의 고생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는 한때 부모님을 잘 모셨다고 생각했습니다.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약 5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습니다.부모님을 떠나보낸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일흔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바로 집사람입니다.그때 나는 직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느라 나름대로 고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부모님 곁에서 더 많은 돌봄을 감당한 사람은 집사람이었습니다.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치매 부모님을 돌보며 이어진 힘겨운 생활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신 기간은 약 15년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약 5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셨습니다.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아프면 환자 한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식사를 챙기고, 곁에서 ..
2026.10.24 -
“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던 장인어른
요즘 부산추모공원에 모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장인어른 생각도 납니다.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흘 뒤, 장인어른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장인어른을 떠올리면 오래전 함께 꼼장어를 먹던 날이 생각납니다.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식당에 마주 앉아 은박지 위에 양념한 꼼장어와 양파, 대파를 올려 구우며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장인어른은 저를 늘 '도서방'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산 이야기와 땅 이야기를 하셨고,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술잔을 채워드렸습니다.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장인어른에게 저는 늘 '도서방'이었습니다그날은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입니다.장인어른은 손자가 키울 강아지를 고르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며 오셨..
2026.10.22 -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한 후회, 3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어머니 곁에 없었습니다.그날도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습니다.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날입니다.어머니가 치매로 고생하시는 동안 나는 직장생활을 핑계로, 때로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갔습니다.아픈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했던 날도 있었습니다.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아들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장례를 마친 뒤 부산추모공원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그곳에서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워 온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그날 이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하지만 금연에 성공했다고 해서 어머..
2026.10.20 -
70대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 일곱 살 손녀와의 약속
어느 날 일곱 살 손녀 YS에게 전화가 왔습니다.“그랜드파더!”손녀는 반갑게 인사하더니 영어로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나는 몇 마디만 알아듣고 나머지는 눈치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어까지 섞어 말하니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그래, 잘한다. 우리 YS 잘한다.”전화를 끊고 나서도 손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아들의 영어책이 떠올랐습니다. 영어 문장 위에 한글로 ‘아엠어보이’라고 적어 놓았던 그 아이가 이제는 일곱 살 손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손녀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날나는 일흔을 넘겼고 아들은 40대, 손녀는 일곱 살입니다. 같은 가족이지만 영어를 처음 접한 환경은 저마다 달랐습니다.손녀가 영어로 말할 때 나는 ‘그랜드파더’처럼 익숙한 표현만 알아들..
202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