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아내의 고생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2026. 10. 24. 03:43ㆍ가족과 돌봄

나는 한때 부모님을 잘 모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약 5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일흔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집사람입니다.

그때 나는 직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느라 나름대로 고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곁에서 더 많은 돌봄을 감당한 사람은 집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치매 부모님을 돌보며 이어진 힘겨운 생활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신 기간은 약 15년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약 5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셨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아프면 환자 한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식사를 챙기고, 곁에서 상태를 살피고, 일상생활을 돕는 일이 매일 이어집니다.

우리 가족도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당시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월급은 200만 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출근하고 월급을 가져오는 것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힘든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부모님을 돌보면서 집안일을 챙겼고, 생활비를 보태기 위한 바깥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내가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집사람의 하루는 계속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그때는 그 수고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었지만, 집사람은 자신의 부모님도 아닌 시부모님을 오랜 세월 돌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습니다.

밖에서는 인심을 쓰면서 집안의 고생은 몰랐습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내가 먼저 술값을 내곤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술자리에서는 기분 좋게 지갑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집사람은 여전히 부모님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활비가 빠듯한데도 밖에서는 선뜻 돈을 쓰면서, 정작 집사람이 얼마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술을 사는 일이 모두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돈을 쓰기 전에 집안 형편을 먼저 살폈어야 했습니다.

밖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했던 만큼 집에서도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부끄럽습니다.

“조금만 고생하자. 나중에는 내가 다 해줄게”

부모님을 모시던 시절, 나는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조금만 고생하자. 나중에는 내가 다 해줄게.”

그때는 진심이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집사람에게 그동안 못 해준 것들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돌보는 시간은 길어졌고, 생활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직장생활을 계속했고, 집사람도 돌봄과 집안일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집사람에게 잘해주겠다는 약속은 늘 나중으로 미뤄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집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먼 훗날의 약속만이 아니었습니다.

힘든 날에는 일을 함께 나누고, 지친 날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때는 왜 그런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뒤늦게 이해하게 된 집사람의 한마디

그 무렵 집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깨끗하게만 살아서 누가 알아주나.”

당시에는 그 말이 서운하게 들렸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정직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정직하게 살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부모님을 돌보는 일까지 계속되니 답답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때 나는 집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내 입장부터 생각했습니다.

'나도 밖에서 고생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집사람이 느꼈을 답답함과 서운함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먼저 물어보고 싶습니다.

“많이 힘들지? 내가 어떤 일을 함께하면 좋겠어?”

말로만 고생한다고 위로할 것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나라도 더 맡고 부모님을 돌보는 시간도 나누었어야 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도 중요했지만, 집사람이 혼자 감당하던 짐을 덜어주는 일 역시 내 몫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에야 보이는 것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돌봄의 시간도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집사람이 감당했던 일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나는 부모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했고, 나름대로 책임을 다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다고 집사람에게 충분히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과 집사람의 고생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때의 나는 내 고생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집사람도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제 와서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집사람이 겪었던 고생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잘 모셨다는 생각보다, 부모님을 모시는 동안 집사람이 얼마나 애썼는지를 먼저 떠올리려 합니다.

일흔이 되어 전하고 싶은 말

부모님을 떠나보낸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시절을 자주 돌아봅니다.

당시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고맙다는 말까지 미룰 필요는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때 조금 더 귀 기울일 수도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을 더 맡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은 형편이 나아진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집사람에게 오랫동안 나중에 잘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 말을 다시 반복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집사람에게 늦게나마 이런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부모님을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때는 내가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고생 많았고, 고마워.”

그 말 뒤에 내 고생을 설명하는 변명은 덧붙이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을 모셨던 세월을 돌아보면, 이제는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보다 집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했는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이제는 말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