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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삶

80대 스님 형님이 내게 남긴 말, 상선약수

dobadalife 2026. 8. 27. 21:58

목차


    이 글을 쓰는 지금, 내일모레면 형님의 81번째 생일입니다.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형님을 미워해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존경하는 마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망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끈끈한 정도 남아 있습니다.

    내 스님 형님은 원래 우리 집안의 기둥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가난한 형편에서도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취직도 일찍 해서 돈을 벌었고 집안에도 힘이 되어줬습니다.

    그런데 형님의 인생은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반듯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걷게 해준 형에게 나는 욕을 했다

    나와 형님은 열 살 차이가 납니다.

    내가 지금까지 형님에게 받은 것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내 아픈 왼다리를 수술받을 수 있게 도와줘 다시 걸어다니게 해준 사람도 형님이었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준 사람도 형님이었습니다.

    살면서 큰 고비가 생길 때마다 부모님보다 형님이 나를 더 챙겨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20대 초반에 형님에게 몹쓸 행동을 했습니다.

    형님이 다시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젊은 혈기로 욕도 하고 마구 깽판을 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내 다리를 다시 걷게 해주고 대학까지 보내준 형인데, 나는 젊다는 이유로 형님 인생을 내 마음대로 판단했습니다.

    형님도 순탄하게 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결혼과 이혼이 반복됐고 부모님과 크게 갈등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한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소식이 뜸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사나 싶어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형님을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손을 내민 사람이 그 형님이었으니까요.

    형님 마음에 오래 남은 한 아들

    형님에게는 자식에 관한 아픔도 있었습니다.

    첫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은 한동안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나중에 친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가 키우겠다고 했고, 형님은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아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뒤 그 아이의 삶이 많이 힘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 아이의 삶이니 여기에서 더 적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형님은 그 일을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도 형님을 보면서 자식에 관한 일만큼은 사람이 마음대로 정리하고 끝낼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다른 자식의 삶은 또 전혀 다르게 흘렀습니다.

    나는 그것을 옆에서 보면서도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의 속마음도 형님만 알 것입니다.

    다만 큰아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형님 마음 한구석에 오래된 미안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산을 정리하고 1년쯤 뒤 스님이 됐다

    세월이 흐른 뒤 형님에게서 또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형님에게 정말 너무한다고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

    남들은 결혼을 한 번도 못 해본 사람도 있는데 형님은 왜 이렇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나 싶었습니다.

    그 뒤 형님은 우리 가족을 또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정리해 당시 아내에게 넘기고 불교 공부를 시작하더니, 1년쯤 지나 스님이 된 것입니다.

    나는 형님이 왜 불가에 귀의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생긴 번민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생인 내 생각입니다.

    형님의 깊은 속내까지 내가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님이 된 뒤 형님 얼굴이 달라졌다

    지금 형님은 경남의 한 시골 법당에서 지냅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이었습니다.

    예전 형님은 겉으로는 늘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어딘지 얼굴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어깨도 조금 처져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된 뒤 만난 형님은 얼굴이 참 맑아 보였습니다.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나는 농담으로 절에서 변호사 시험 공부라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형님은 불교 법문을 많이 읽고 신도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물었습니다.

    “형님, 나도 불가에 귀의할까요?”

    형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집안에 스님은 한 사람만 있으면 되니까 니는 욕심 부리지 말고 재밌게 살거라.”

    그 말을 듣는데 옛날 형님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사람 같기도 했습니다.

    “스님도 인간이지라”

    형님이 내게 해준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도 인간이지라.”

    스님이 됐다고 사람 마음속의 번민과 번뇌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마음들이 찾아오지만 이제는 그것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반갑게 맞이하고, 수행하면서 세월을 기다리며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있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멋진 것이니 남의 것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도 해줬습니다.

    그러면서 형님이 좋아하는 말을 하나 들려줬습니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형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이라며,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겸손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배워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날 상선약수라는 말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큰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형님이 눈을 감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형님에게 큰아들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습니다.

    형님은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부처님 제자가 된 뒤로는 그 아이를 예전처럼 자식이라는 인연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스님과 가엾은 한 불자의 인연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불공드리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형님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한숨을 보니 스님이 되었다고 아버지였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형님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누구의 형도 아니고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모든 불자와 중생들과 함께하는 이름 없고 보잘것없는 그냥 스님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형님에게 현실도피가 아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형님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내가 전부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판단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형님에게 상선약수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살아보겠다고 했습니다.

    81번째 생일을 앞두고도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형님이 혼자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아무리 스님이라도 여전히 열 살 많은 내 형님입니다.

    가끔은 저렇게 외롭게 살아도 되는가 싶어 가슴이 미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형님이 나를 위로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인생도 긴 세월 속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또 아무 말을 못 합니다.

    내일모레면 형님의 81번째 생일입니다.

    찾아뵈어야 하는데 아직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원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를 걷게 해주고 대학까지 보내준 고마움, 젊어서 형님에게 함부로 했던 미안함, 형님의 삶을 보면서 품었던 원망과 지금의 존경이 한꺼번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님을 생각할 때면 내가 그날 대답했던 네 글자가 먼저 떠오릅니다.

    상선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