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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영화 해바라기를 다시 봤습니다.
20대 때는 유명한 영화라고 하니 안 보면 촌놈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친구 따라 봤던 영화였습니다.
그때는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구나, 그 정도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쟁 때문에 헤어지고,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다른 가정을 이루고 있던 남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저 사람 마음속에는 얼마나 말 못 할 것이 많을까.
그 생각을 하다가 그날 밤 나나 무스쿠리의 Try to Remember를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니 영화보다 더 오래된 내 기억 하나가 살아났습니다.
결혼식을 사흘 앞둔 첫사랑을 영도다리 근처에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돌려보냈던 밤입니다.
20대에는 영화 속 여주인공만 보였는데, 5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보였습니다.
그때는 소피아 로렌만 보였던 영화였다
젊었을 때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누가 유명한 영화를 먼저 보고 오면 괜히 아는 척을 했고, 안 본 사람한테는 그것도 안 봤냐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소피아 로렌이 나온 해바라기도 그렇게 처음 봤습니다.
그때는 영화의 깊은 내용보다 배우가 멋있다느니, 어느 장면이 좋았다느니 하는 친구들 이야기에 더 귀가 솔깃했습니다.
나도 철이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는데 이미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는 정도만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젊을 때는 별생각 없이 지나갔던 남자 주인공의 처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미 지나간 삶과 지금 살아야 하는 삶 사이에서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내 20대가 따라 나왔습니다.
우리도 앞날 모르고 붙어 다니던 스무 살이었다
나에게도 첫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수아라는 가명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앞날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더 해야 했고 변변한 직장도 없었는데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붙어 다녔습니다.
수아의 가족은 우리 관계를 아주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나도 가족들에게 크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두들겨 맞은 것은 아니지만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겁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혼나야 하나 원망도 했습니다.
지금 50년이 지나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젊은 마음만 가지고 어떻게 먹고살겠느냐, 공부도 하고 직장도 잡고 앞으로 살아갈 기반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을 겁니다.
결국 가족의 강한 반대 속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수아의 다른 결혼이 정해졌습니다.
결혼식 사흘 전, 남포동에서 다시 만났다
결혼식을 사흘 앞둔 저녁이었습니다.
우리는 부산 남포동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1970년대 후반의 남포동 뒷골목에는 음악다방과 주점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 젊었던 나에게 남포동은 친구도 만나고 음악도 듣고 술도 한잔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날 수아는 평소보다 화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목걸이도 하고 시계도 차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별생각을 못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결혼을 준비하며 받은 물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가끔 마시던 마주앙을 그날 두 병이나 마셨습니다.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술자리를 나오고 나서 둘이 영도다리 쪽으로 걸어갔던 것은 기억합니다.
고깃배가 보이던 선착장 근처까지 갔습니다.
결혼식을 사흘 앞둔 여자와 그 여자를 보내야 하는 남자가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했겠습니까.
말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도망가요. 나 시계도 반지도 돈도 있어요”
선착장 근처에서 수아가 나를 바라봤습니다.
슬픈 얼굴이었습니다.
그때는 요즘처럼 연인끼리 서로 ‘자기’라고 부르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아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말했습니다.
나 지금 시계랑 반지랑 돈도 있으니 도망가요.”
그 말을 듣고 나도 잠깐 흔들렸습니다.
스무 살 조금 넘은 철부지가 좋아하는 사람과 도망가자는 말을 들었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런데 잠깐 뒤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버리면 정말 행복할까.
나는 공부도 더 해야 했고 제대로 자리 잡은 직장도 없었습니다.
수아 역시 며칠 뒤 결혼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냥 도망가는 것이 사랑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다음날부터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은 거창한 사랑의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실제로 둘이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부터 달랬습니다.
그리고 수아에게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대로 행동했다가는 우리 둘 모두에게 큰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택시를 잡았습니다.
수아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택시가 떠난 뒤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날의 영도다리와 선착장만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며칠 뒤 예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다
며칠 뒤 나는 수아의 결혼식에 갔습니다.
왜 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식장에서 수아와 내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납니다.
크고 동그란 두 눈으로 나를 보던 수아가 갑자기 눈을 꽉 감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50년 지나 다시 본 영화가 그 밤을 꺼냈다
그 뒤 직장생활도 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키우고 나이를 먹었습니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20대 일은 까마득하게 멀어집니다.
그런데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이 50년 전 기억을 이렇게 갑자기 끌어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날은 다이애나 로스와 스리 독 나이트 같은 오래된 음악도 찾아 들었습니다.
음악다방에 앉아 있던 젊은 시절도 생각났고 남포동 골목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영도다리 근처에서 택시를 잡던 내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수아를 보내지 않고 같이 떠났다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와서 좋았을 것이다, 나빴을 것이다 하고 없는 인생을 만들어 판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잠깐 흔들렸고, 결국 수아를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식장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수아는 두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50년이 다 지나간 지금은 그 모습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 붙잡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내 철없던 20대 한쪽에 남아 있는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으로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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