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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인어른과 노포에 앉아 꼼장어에 소주 한잔을 했습니다.
꼼장어에 양파와 대파를 넣고 양념을 한 뒤 은박지를 깔고 구워 먹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날 술맛이 참 좋았습니다.
장인은 그때도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도서방.”
그러면서 산 이야기, 땅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장인과 둘이 앉아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한잔이 장인과 내가 마시는 마지막 술이 될 줄은요.
요즘 나이가 들어 부모님 산소에 자주 가게 됩니다.
어느 날 산소에 다녀오다가 문득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일 만에 돌아가신 장인어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인과 함께했던 세월도 참 오래됐습니다.

장인과 20년, 나는 장인에게 ‘도서방’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이 아들이 강아지를 고르는 것을 한번 봐주겠다며 오셨습니다.
그날도 자연스럽게 술 한잔을 하게 됐습니다.
노포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꼼장어를 구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장인은 늘 나를 “도서방”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이 앉으면 산 이야기를 했고, 땅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산은 어떻고, 저 땅은 어떻고…”
장인은 그런 이야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싫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처음부터 한 20년 정도는 장인어른과 정말 잘 지냈습니다.
어쩌면 자기 아들이나 딸보다 나를 더 좋아하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장인은 가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우물 옆 감나무밭 150평은 도서방 줘야지.”
나는 그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장인이 그런 말씀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처가에 갈 때면 장인이 좋아하는 생선을 어시장에 가서 사다 드렸습니다. 아끼지 않고 좋은 걸로 골랐습니다.
처가에는 아들 둘, 딸 둘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1년에 한 번 찾아갈까 말까 했지만, 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장인을 찾아뵈었습니다.
둘이 앉으면 장인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도서방, 이거 주고 가야지.”
“도서방, 저것도 주고 가야지.”
그러면서 웃으셨습니다.
“도서방 말고는 줄 사람이 없다.”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하셨습니다.
“나는 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
그때는 그런 말들이 그냥 정겨운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귀한 말이었습니다.
자주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날
그런데 어느 날 일이 생겼습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큰처남이 술에 취해 나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시골집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는 겁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장인이 늘 사위인 나만 칭찬하는 게 미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큰처남과 나는 사이가 서먹해졌습니다.
5개월, 6개월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처남이 나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자형요, 한번 들어보소.”
막내 처남은 장인의 재산이 큰처남에게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막내 처남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해하자.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니까 나중에 살짝 물어보면 되지.”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된 것인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나는 처가에 예전처럼 자주 가지 않게 됐습니다.
사람 사이란 참 이상합니다.
큰일이 있어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작은 서운함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아 발걸음을 멀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일 뒤 장인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다 장인어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쯔쯔가무시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입원하시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장인어른도 돌아가셨습니다.
불과 사흘 차이였습니다.
나는 장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상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막내 처남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인이 남긴 뜻에 따라 화장해서 고향 함양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장인 나이가 일흔셋쯤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의 내 나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나이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요즘 들어 마음이 더 짠합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찾아뵐 걸 그랬나.
그때 한 번이라도 더 술 한잔할 걸 그랬나.
아버지와 장인이 거의 동시에 떠나고 나서야 지난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그 사람이 늘 곁에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떠나고 나면 그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생각납니다.
장인은 내게 좋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장인어른은 참 안타까운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산 이야기를 하던 모습도,
땅 이야기를 하던 모습도,
나를 “도서방”이라고 부르던 목소리도,
“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고 하시던 말씀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런 평범한 시간이 나중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요.
인생이 참 그렇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 사람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바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인어른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아무 서운함 없이 웃으면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장인어른, 도서방 왔습니다.”
그리고 술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장인이 좋아하시던 꼼장어를 먹으러 가봐야겠습니다.
그때 그 꼼장어집이 아직 남아 있을까요?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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