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0. 17:30ㆍ가족·돌봄
나는 한때 내가 부모님을 잘 모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치매로 약 5년을 지내셨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이어지는 돌봄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느라 힘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부모님을 돌보고 집안일까지 감당했던 사람은 제가 아니라 집사람이었습니다.
치매 부모님을 모실 때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

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신 시간은 약 15년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약 5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떻게든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월급은 약 200만 원이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을 돌보는 일까지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을 돌보는 일의 상당 부분을 집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사람은 부모님을 돌보는 일뿐 아니라 집안일까지 챙겨야 했습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바깥일도 해야 했으니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때는 눈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바빴습니다. 집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월급 200만 원인데 밖에서는 내가 먼저 술값을 냈다
당시 제 월급은 약 200만 원이었습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면 제가 먼저 술값을 내곤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는 기분 좋게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 상황이 달랐습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계속됐고, 집사람은 집안일과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까지 함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인심을 쓰면서 정작 집에서는 집사람의 고단함을 얼마나 헤아렸을까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이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깊이 살펴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고생하자. 나중에는 내가 다 해줄게”
저는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조금만 고생하자. 나중에는 내가 다 해줄게.”
그때는 정말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을 모시고 직장생활까지 해야 하니 힘들지만, 언젠가는 형편이 나아지고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집사람에게 그동안 못 해준 것들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시간은 길어졌고, 저도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집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몫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던 ‘나중’은 언제였을까요.
그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요.
이제 70세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으로는 잘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젠가 해주겠다는 약속보다 지금 나누는 작은 수고와 배려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너무 깨끗하게만 살아서 누가 알아주나”
집사람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깨끗하게만 살아서 누가 알아주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집사람은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아서 가족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지금 와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원칙과 가족의 생활을 얼마나 함께 고민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족의 어려움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내가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살았다면 집사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집사람의 마음이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내 삶을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약 5년을 지내셨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직장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우선이었기에 제 삶을 돌아볼 여유는 많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직장생활도 끝난 뒤에야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가족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을 외면하지 않았고, 가족을 위해 일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동안 집사람이 감당했던 일들, 제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마음들, 나중에 잘해주겠다고 미뤄두었던 약속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그 시간은 저 혼자 살아낸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람도 함께 버텨낸 시간이었습니다.
70세가 되어 생각나는 사람은 집사람이다
이제 70세가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 제 곁에서 더 많은 일을 감당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집사람입니다.
아버지의 긴 치매 투병 기간과 어머니의 투병 기간 동안 집사람은 부모님을 돌보고 집안일을 챙겼습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바깥일도 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집사람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막연한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그때그때 함께 짐을 나누고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집사람의 수고를 더 자주 알아주고,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제 몫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잘못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약 5년을 지내셨습니다.
그 긴 시간을 함께 살아내면서 가장 많이 버틴 사람은 제가 아니라 집사람이었습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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