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2. 09:12ㆍ가족·돌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어머니 곁에 없었다.
그날도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뒤였다.
지금 생각해도 평생 마음에 남을 후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부산추모공원에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수십 년 동안 피워 온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어느새 하루 두세 갑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 내가 담배를 끊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리고 더는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병든 어머니가 싫어 집에 늦게 들어갔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며 약 5년 동안 지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낙상으로 고관절 부근에 금이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셨고, 한동안 집에서 고통을 견디셔야 했다.
뒤늦게 병원에 모시고 갔지만, 의사는 어머니의 연세를 고려할 때 수술이 쉽지 않다며 집에서 간호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셨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까.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나 부족한 아들이었다.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어머니가 집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찍 귀가하기보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고스톱이나 포커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가면 아픈 어머니를 마주해야 했다. 그 모습이 두려워 자꾸 밖으로 돌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 이제야 조금씩 짐작할 뿐이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후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기 위해 부산추모공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살아 계실 때는 언제든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잘해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더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조금 더 자주 곁에 있어 드렸다면,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더 나누었다면, 마지막 순간에 손이라도 잡아 드렸다면 어땠을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후회해도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부산추모공원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약속했다.
이제 담배를 끊겠다고.
어머니에게 해 드리지 못한 일을 모두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는 제대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 두세 갑을 피우던 내가 금연을 결심한 이유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흡연량은 점점 늘어났다. 담배를 끊기 전에는 하루 두세 갑을 피울 정도였다.
그만큼 담배는 내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담배를 찾았고, 술을 마실 때도 담배를 피웠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습관처럼 담배에 손이 갔다.
그런 내가 담배를 끊겠다고 했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연을 시작하고 처음 석 달은 특히 힘들었다.
습관처럼 담배가 생각났고, 한 개비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유혹도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부산추모공원에서 어머니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다시 담배를 피운다면 어머니에게 한 약속부터 저버리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금연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단순히 담배를 참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어머니가 몰래 사 주신 수학책
담배를 끊고 지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떠오를 때가 있다.
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방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어머니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도 많이 속상하셨을 것이다. 어린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를 나무라기보다 조용히 감싸 주셨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하지만 자식에게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어 하셨다.
내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수학책을 사 주려고 돈을 따로 모으셨고,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책을 사 주셨다.
자신은 배우지 못한 것이 많았어도 아들만큼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책 한 권을 사 주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애쓰셨는지, 그 안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닫는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없이 나를 위해 애쓰셨다는 것을.
그런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나는 곁을 지키지 못했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일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담배는 끊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은 남아 있다
금연을 시작한 뒤 힘든 순간마다 어머니를 떠올렸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면 부산추모공원에서 했던 약속을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어느새 담배와 멀어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물론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잘못했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연이 어머니에게 해 드리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할 수도 없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뵙고, 아픈 몸을 살펴 드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넸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어머니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은 지나간 뒤에야 소중한 것을 깨닫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머니가 곁에 계실 때는 그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에야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진 빚을 모두 갚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살아 계실 때 지켜 드리지 못했던 약속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다.
어머니, 그때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애써 주셨던 모든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부산추모공원에서 어머니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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