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9. 15:14ㆍ가족·돌봄
어느 날 일곱 살 손녀 YS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손녀가 “그랜드파더!” 하면서 영어로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몇 마디 알아듣고 나머지는 눈치로 짐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는 중국어까지 섞어서 이야기하더군요.
나는 그저 “그래, 잘한다. 우리 YS 잘한다”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오래전 아들의 영어책이 생각났습니다.
영어 문장 위에 한글로 “아엠어보이”라고 또박또박 적어 놓았던 그 아이가 지금은 이 일곱 살 손녀의 아버지입니다.

손녀 전화에서 내가 알아들은 건 몇 마디뿐이었다
나는 70대이고, 아들은 40대, 손녀는 일곱 살입니다. 우리 집 3대가 영어를 처음 접한 모습은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손녀의 영어를 대충 알아들었다는 것도 조금 과장입니다. “그랜드파더” 같은 몇 마디를 알아듣고 나머지는 상황으로 짐작한 겁니다.
그런데 손녀가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하니, 나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래, 잘한다. 우리 YS 잘한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중국어가 나왔을 때는 더 몰랐습니다. “니하오마”나 “셰셰” 정도는 들어 봤지만, 그 뒤에 나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손녀는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배웠고, 최근에는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일곱 살 때를 떠올려 보니 참 다른 세상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손녀보다 아들의 어린 시절이 더 많이 생각났습니다.
영어책 위에 적혀 있던 ‘아엠어보이’
사실 나는 아들 공부에 별 관심 없이 살았습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대단한 교육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바빴고,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어느 날 아들이 없을 때 방에 들어갔다가 책상 위에 펼쳐진 영어책을 봤습니다.
영어 본문 위에 한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I AM A BOY’ 위에는 “아엠어보이”, ‘YOU ARE A GIRL’ 위에는 “유아러걸”이라고 또박또박 써 놓았습니다.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뭐 이런 놈이 있나’ 싶었고, 영어 공부를 이렇게 못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1960년대 후반까지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영어는 중학교에 가서야 배웠고, 학교에 다닐 때는 가방에 잉크펜을 넣어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은 생각하지 않고 아들만 다그쳤습니다.
“당장 영어학원에 가자. 너 이러면 고등학교 못 간다.”
평소 공부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던 아버지가 갑자기 그러니 아들도 황당했을 겁니다.
영어학원은 하루 만에 그만뒀다
결국 아들을 영어학원에 등록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하루 만에 학원을 그만두고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학교 공부도 따라가기 힘든데, 학원에서 자기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집안 사정도 안 좋은데 돈도 아껴야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학원은 그만뒀지만 아들은 나중에 영어를 혼자 공부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영어 팝송을 듣다가 궁금한 단어를 찾아보고, 노래 가사를 보면서 영어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학원에 밀어 넣어서 영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의 뜻이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본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학원에 보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물어보고 옆에서 도와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에게는 다그쳤지만 옆에 앉아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영어책에 “아엠어보이”라고 적던 아들이 이제 40대가 됐습니다. 지금은 자기 딸이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아들과 조금 더 함께 있어 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가 방에 혼자 앉아 영어책 위에 한글을 적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습니다.
다그치기는 쉬웠는데, 옆에 앉아 주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쉽습니다.
손녀가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어떤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손녀가 이야기할 때 몇 마디라도 알아듣고 같이 웃어 주는 것입니다.
70대에 다시 영어책을 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에서 시니어 영어 강의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손녀에게 줄 용돈으로 영어책도 한 권 사 볼 생각을 했습니다. 손녀 손에 쥐여 줄 돈으로 내 영어책을 산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 책 한 권이 손녀에게 주는 용돈만큼이나 나에게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손녀에게 큰소리도 쳤습니다.
“YS야, 두 달만 기다려라. 그때 우리 외국인 흉내 한번 멋지게 내보자.”
서울 이태원 거리를 같이 걸으면서 영어로 몇 마디 해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손녀의 영어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두 달 공부해서 얼마나 영어를 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손녀 옆자리에 한번 앉아 보려는 겁니다.
아들에게는 못 해 준 일입니다.
이태원에 가서 내가 제대로 알아듣는 영어가 몇 마디뿐이어도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잘한다”고 말만 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손녀가 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알아듣는 할아버지가 되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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