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던 장인어른

2026. 10. 22. 22:09ㆍ가족과 돌봄

요즘 부산추모공원에 모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장인어른 생각도 납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흘 뒤, 장인어른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을 떠올리면 오래전 함께 꼼장어를 먹던 날이 생각납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식당에 마주 앉아 은박지 위에 양념한 꼼장어와 양파, 대파를 올려 구우며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장인어른은 저를 늘 '도서방'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산 이야기와 땅 이야기를 하셨고,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술잔을 채워드렸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장인어른에게 저는 늘 '도서방'이었습니다

그날은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입니다.

장인어른은 손자가 키울 강아지를 고르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며 오셨고, 우리는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은 평소 산과 땅 이야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느 산이 좋고, 어느 땅이 어떻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결혼한 뒤 약 20년 동안 장인어른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사위인 저를 믿고 아껴주신다는 마음을 자주 느꼈습니다.

가끔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우물 옆 감나무밭 150평은 도서방 줘야지."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웃었습니다. 실제로 땅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기보다는 사위를 그만큼 아껴주시는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처가에 갈 때면 어시장에서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생선을 골라 들고 갔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찾아뵈면 장인어른도 반갑게 맞아주시며 이것저것 챙겨주셨습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

그때는 그저 듣기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그 말씀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큰처남과 서먹해지면서 멀어진 발걸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큰처남과 불편한 일이 생겼습니다.

술자리에서 앞으로 시골집에 너무 자주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듣기로는 장인어른이 사위인 저를 자주 칭찬하시는 것이 큰처남에게는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장인어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큰처남과 사이가 서먹해졌고, 대여섯 달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서로의 마음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러던 중 막내 처남에게 장인어른의 재산이 큰처남 명의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해하자. 아직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나중에 조용히 여쭤보면 되지."

재산 명의가 어떤 경위로 바뀌었는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여러 일이 겹치면서 처가에 가는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장인어른과 다툰 것도 아니었는데 큰처남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예전처럼 편하게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사흘 뒤, 장인어른마저 떠나셨습니다

그 후 장인어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쯔쯔가무시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저는 병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며칠 치료를 받으시면 괜찮아지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장인어른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채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두 분을 잇달아 떠나보내야 했던 그 시간은 지금도 마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아버지 상중이라 장인어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막내 처남에게 장인어른의 뜻에 따라 화장한 뒤 고향 함양에 모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인어른은 당시 일흔셋쯤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일흔이 되고 보니 그 나이가 새삼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저보다 불과 몇 살 많은 나이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저에게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장인어른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조금 더 찾아뵐 걸 그랬습니다.

큰처남과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도 장인어른만큼은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습니다.

그 아쉬움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장인어른의 마음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함께 마셨던 소주 한잔이 떠오릅니다.

좋아하시는 생선을 사 들고 처가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도서방."

그렇게 부르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익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언제든 다시 찾아뵐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연에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장인어른을 떠나보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장인어른, 도서방 왔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산 이야기도 좋고, 땅 이야기도 좋습니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말씀을 다시 하셔도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언젠가 아들과 함께 꼼장어를 먹으러 가보고 싶습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강아지를 고르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며 오셨던 날을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날 우리가 함께 먹었던 꼼장어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오래전 장인어른과 술잔을 나누었던 식당이 아직 남아 있을까요.

그 식당이 남아 있다면 아들과 함께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없어졌다면 다른 곳이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들과 마주 앉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네 외할아버지는 나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도 오늘 너하고 함께하니 참 좋다."

장인어른이 제게 남겨주신 것은 술맛에 대한 기억만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고, 그 시간이 좋다고 표현해 주시던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때는 평범하게 들렸던 한마디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말이 되었습니다.

"도서방하고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말씀이 가끔은 참 그립습니다.

※ 이 글은 장인어른과 함께 지내며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오래전의 대화와 시기, 나이는 기억에 따른 것이며, 가족 간의 일은 당시 제가 듣고 느낀 범위에서 기록했습니다. 재산 관련 내용은 전해 들은 이야기로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닙니다.

※ 본문 이미지는 글의 분위기를 재구성한 AI 생성 이미지로, 실제 인물이나 장소의 사진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