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도 일자리를 찾는 나, 병아리콩 죽에서 찾은 작은 자신감

2026. 10. 12. 12:50ㆍ돈·일상

“하이에나처럼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현재 내 나이는 70살이다. 일에 대한 열정은 아직 남아 있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남 양산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밤에는 왠지 내 모습이 작아 보이고, 새벽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안경을 쓰고 TV 리모컨을 누른다. 그렇게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70살, 하이에나처럼 일자리를 찾는 중

나는 지금도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해진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보이면 여기저기 알아본다.

내 표현으로는 하이에나처럼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있지만, 아직 내 몸과 머리를 써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70살인 나를 받아주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있다고 해서 불러주는 것도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취업할 때 나이는 단순한 숫자로 끝나지 않았다. 문 앞까지 가보기도 전에 나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고, 이제는 일보다 관광이나 여행을 즐기며 지낸다. 틈만 나면 함께 놀러 가자고 하지만, 나는 형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누가 더 잘살고 못 사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열등감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부산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돌아온 밤

지난 토요일에는 부산에 사는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친구가 나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 친구들의 속사정이 어떤지는 모른다. 다만 그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부럽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질투심도 생겼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중에 두 번째 사업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면 아버지인 나를 책임자로 일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마치 앞으로 내가 맡을 일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은 허세였다.

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별도로 투자해 사업을 더 벌일 계획은 없다. 그 사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한 것은 나 역시 무언가를 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는 동안에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나를 무시한 것도 아니었고, 일부러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나 혼자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했고, 지기 싫은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친구들보다 나 자신을 더 원망하게 됐다.

밤늦게 양산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마셨다. 남들과 너무 비교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줄 알았는데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익숙한 TV를 켰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결국 TV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했던 허세는 그 자리에서 끝났지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밤늦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새벽 2시와 3시 사이, 아침에는 나에게 감사한다

요즘은 새벽 2시나 3시에 자주 잠에서 깬다.

아침에는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고, 낮에는 컴퓨터와 TV를 보거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잠에서 깬 새벽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조용한 집 안에 혼자 누워 있으면 낮 동안 밀어두었던 생각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보고 싶다. 그런 시간에는 내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뚜렷하게 해놓은 일도 없이 세월만 보내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때로는 죽으면 편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두렵기도 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매실주를 한 컵 마시기도 한다.

그래도 새벽이 지나면 뉴스가 시작되고, 일상이 다시 찾아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눈을 떴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 하루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아 쓰고 TV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켠다. 그다음 휴대전화로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생활이 2~3년째 이어지고 있다.

새벽에 했던 생각이 아침이 되었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안경을 쓰고 리모컨을 누르는 동안 나는 다시 오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자주 본다. 화면 속 음식을 보고 있으면 오늘은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다음 끼니를 준비하는 일도 오전에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된다.

병아리콩 50%, 3주 동안 직접 만들어 본 죽

맛있는 병아리콩죽

나는 돼지고기 삼겹살 수육을 제법 잘 만든다. 술안주로는 그만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술안주보다 아침에 먹을 음식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됐다.

평소 위가 약한 편이라 아침에 먹기 편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병아리콩과 찹쌀을 갈아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본 음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재료의 비율을 바꿔가며 만들어 봤다.

처음에는 병아리콩을 전체 재료의 20% 정도 넣었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고소한 맛이 부족했다. 다음에는 30%, 그다음에는 40%로 비율을 조금씩 높였다.

한 번 끓이면 2~3일 동안 먹을 분량이 나왔다. 다 먹고 나면 다음번에는 비율을 조금씩 바꿔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약 3주 동안 여러 번 만들어 먹어 보니, 병아리콩과 찹쌀을 1 대 1로 넣었을 때 내 입맛에는 가장 고소하고 맛있었다. 물의 양도 너무 되거나 묽지 않도록 조절했다.

일자리를 찾을 때는 내가 선택받아야 하지만, 죽을 만들 때는 내가 재료와 비율을 정할 수 있었다.

병아리콩의 비율을 20%에서 50%까지 올리는 동안 실패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 고소한 맛이 부족하면 다음번에 병아리콩을 더 넣으면 됐다.

그렇게 내가 먹을 아침밥 한 가지를 내 손으로 완성했다.

언젠가 친척 누님의 병문안을 갈 일이 있었다. 내가 끓인 병아리콩 죽을 보온병에 담아 가져갔다.

누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누님은 “노인네 남자가 정말 솜씨가 좋다”며 죽집을 해보라고 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아들의 사업을 이야기했지만, 누님 앞에서는 내가 실제로 만든 죽 한 통이면 충분했다.

거창한 책임자 자리도 아니었고,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대단한 업적도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여전히 일자리를 찾고 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친구들의 생활이 부러울 때도 있고, 혼자 보내는 새벽이 유난히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 삶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침에 먹을 죽을 직접 만들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병아리콩 죽을 잘 만든다고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 무언가를 배우고, 직접 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70살이라는 나이가 때로는 벽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여전히 일하고 싶다.

친구들 앞에서 괜히 허세를 부렸던 일은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는 없는 미래를 꾸며 이야기하기보다, 오늘 내가 실제로 해낸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내일도 일자리를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는 내가 만든 죽을 먹을 생각이다.

아직 내게는 해볼 일이 남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