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1. 02:10ㆍ돈·일상
“파산이라는 말까지 찾아봤다. 죽을 때까지 빚을 안고 사는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비참했다.”
내 나이 70살이다.
말년에 아들과 함께 가게를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내 명의로 사업자를 내고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면 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 역시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진 돈만으로는 부족해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아내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가족이 함께 시작한 가게가 이제는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월세도 두 번이나 밀렸다. 그런데도 아직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하루 매출은 70만~100만 원인데 돈이 남지 않았다
지금 가게의 하루 매출은 대략 7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다.
숫자만 보면 장사가 아주 안되는 것도 아닌데 왜 힘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에 이 정도 매출이 나오면 월세를 내고 직원들 월급을 주더라도 어떻게든 가게를 꾸려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장사를 해보니 매출과 통장에 남는 돈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월세는 한 달에 200만 원이다. 대출 원금과 이자로 거의 300만 원이 나간다. 인건비도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약 350만 원이 든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로열티 35만 원과 회계사무소 비용 10만 원, 정수기 비용이 추가된다. 관리비와 수도요금, 전기요금, 가스요금도 매달 나간다.
재료비도 들어간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같은 배달 플랫폼을 통해 주문을 받아도 각종 비용이 발생한다.
평생 나름대로 계산은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고 나니 하루 장사로 돈이 들어왔다 싶으면 재료비가 빠져나갔다. 며칠 지나면 또 다른 비용을 내야 했다.
한 달 내내 돈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장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을 보면 허탈할 때가 많았다.
아내도 거의 2년 동안 제대로 된 월급 한 번 받지 못한 채 가게 일을 도왔다. 가족이 함께하는 가게라는 생각에 자기 몫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아내의 몸에도 무리가 왔다. 최근에는 아내마저 일을 쉬고 있다.
잘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내 몸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들까지 함께 힘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장 마음이 아프다.
한 달 5만~6만 원인 줄 알았던 광고 계약, 해지하려니 600만 원이 나왔다
가게를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홍보를 해주겠다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
가게를 홍보해 주겠다, 블로그를 만들어 주겠다,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나에게는 그런 제안이 솔깃하게 들렸다.
당시 내가 들은 설명으로는 한 달에 5만~6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계약서도 받았지만 가게 문을 막 열었을 때라 하루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몇만 원 정도면 가게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 계약을 그만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됐으며, 지금 해지하려면 그동안 할인받았다는 금액 등을 다시 계산해 약 6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 그래도 가게에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할인받았다는 것인지, 그동안 받은 홍보가 실제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도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60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막막했다.
너무 답답해서 네이버 지식인에도 질문을 올리고 상담을 받을 만한 곳에도 전화해 봤다. 한 곳에 문의하면 다른 곳에 알아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니 어디에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계약의 법적 효력이나 해지 비용이 정당한지는 계약서와 구체적인 조건을 확인해야 할 문제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일을 겪고 나서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
전화로 광고나 마케팅 제안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용이 적어 보여도 계약기간과 자동 갱신 여부, 중도 해지 조건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가게에서 물러났고, 직장 일을 마친 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지금 가게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양산에서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게는 부산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가게에 나가 뭐라도 돕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예전에 가게 일을 도울 때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가게 안에서는 환풍기 소리가 계속 났다. 손님이 무슨 말을 하는데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었다.
요즘 배달 장사는 노트북과 여러 배달 플랫폼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런 기기와 프로그램을 빠르게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주문 하나를 놓치기도 하고, 내용을 잘못 확인하기도 했다. 내 실수로 환불해 준 경우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있었다.
한두 번이라고 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환불 한 건에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처리해 주기도 했다.
가게를 도우러 나왔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더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한 끝에 내가 가게에서 직접 하는 일을 줄였다.
나이가 들었다고 누구나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가게 일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아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들도 자기 회사 일이 있다. 회사 일을 마치면 곧바로 가게로 가서 저녁 장사를 돕고, 주말에도 시간을 쪼개 일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도 많다.
정직원을 충분히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점심 장사와 저녁 장사, 주말 장사를 나누어 버티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그만하자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가게에서 많은 일을 해주지는 못해도 아들에게 전화는 한다.
밥은 먹었는지,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물어본다.
그런 평범한 질문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미안하게 느껴진다.
파산이라는 단어까지 검색했지만, 오늘도 가게 문은 열려 있다
솔직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너무 힘드니 가게를 접으면 적어도 지금의 걱정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매출은 끊기는데 이미 생긴 빚과 비용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보증금 3,000만 원도 묶여 있다. 월세는 두 번이나 내지 못했다.
임대인에게 정말 미안하다.
임대인도 우리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아직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하다.
돈이 생기면 밀린 월세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파산이라는 단어까지 검색했다.
살면서 내가 그런 단어를 내 일처럼 찾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실제로 내가 파산이나 채무조정 절차의 대상이 되는지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당시에는 그만큼 마음이 막막했다는 이야기다.
죽을 때까지 빚을 안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비참했다.
내 나이에 다시 돈을 벌어 이 빚을 정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겁부터 났다.
여름에는 매출이 많이 줄었다. 장사는 오늘 들어온 돈으로 다음에 필요한 재료를 사고, 며칠 뒤 나갈 비용을 준비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매출이 줄어드니 그 흐름이 바로 막히기 시작했다.
장사를 하면 매출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게를 운영해 보니 매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했다.
매출에서 재료비와 인건비, 임대료, 각종 수수료와 대출 상환액 등을 감당하고 나서 실제로 얼마가 남는지 살펴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도 아직 손님이 완전히 끊긴 가게는 아니다.
아들은 조금만 더 해보자고 한다.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애쓰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나부터 포기하자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다.
아들이 죽기 살기로 해보잔다. 그래서 나는 응원이라도 하고 있다
아들은 조금만 더 해보자고 한다.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말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들에게 짐을 지운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내가 다시 젊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모든 빚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들이 애쓰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도 내일이면 아들에게 다시 전화할 것이다.
밥은 먹었는지, 몸은 괜찮은지,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물어볼 것이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정도라면 그것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잘해보겠다고 시작한 가게가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큰 무게가 될 줄은 몰랐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오늘도 가게 문은 열려 있고, 아들은 자기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도 아들에게 응원 한마디를 건네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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