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1. 19:10ㆍ은퇴 후 도전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갔다.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매입한 것이었다. 약 25평짜리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 약 4만 평의 야산, 주변 전답 약 2천 평이 있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집과 땅을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나에게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었고, 잠시 중개 업무를 해본 경험도 있었다. 아들도 당시 투잡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가격이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2~3년 정도 보유하다가 다시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 돌아보면 부동산을 조금 안다는 생각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살 때는 나중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매도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4만 평 야산보다 무거웠던 3억 5천만 원 대출
집과 땅을 매입하면서 지역농협에서 약 3억 5천만 원을 담보대출로 받았다.
처음 1년 정도는 이자가 지금처럼 크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금리가 약 2.8%였지만, 이후에는 약 5%까지 올랐다.
이자만 내는 것도 아니었다. 원금까지 함께 갚아야 했다.
국민연금을 받으면 생활비를 마련하기에 앞서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갚는 일이 먼저였다. 돈이 부족할 때는 도시에 사는 아들이 조금씩 보태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의 부동산 사무실도 경기가 좋지 않아 수입이 줄었다. 우리 역시 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대출금이 연체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아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본전이라도 받고 다시 팔자.”
읍내 부동산에 집과 땅을 매물로 내놓았다. 더 많은 돈을 받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우리가 매입했던 금액 정도만 받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물로 내놓은 지 약 10개월이 지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살 때는 마음만 먹으면 나중에 다시 팔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다. 막상 매도자가 되고 나니 매수자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부동산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나도 시장 상황 앞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내는 목욕탕 카운터로, 나는 풀밭으로 갔다
집이 팔릴 때까지는 어떻게든 대출을 감당해야 했다.
아내는 읍내 목욕탕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틈틈이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채소부터 심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채소를 심는 것보다 땅을 고르고 계속 자라는 풀을 베는 일이 더 힘들었다.
도시에 살 때는 시골집에 넓은 땅이 딸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생활해 보니 넓은 땅은 그저 바라보며 즐기는 풍경이 아니었다. 계속 손을 대고 관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풀을 베고 땅을 정리하다 보니 장비 없이는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땅을 살 때만 해도 내가 중장비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은 팔리지 않았고, 나는 그 땅에서 계속 생활해야 했다. 결국 경남 김해에 있는 중장비 학원을 알아봤다.
그때 내 나이는 66세였다.
66세에 청바지를 입고 중장비 학원에 갔다

중장비 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배우던 시절
학원 한 반에는 수강생이 약 30명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 젊어 보였다. 내 눈에는 20대부터 50대 정도의 사람들이 많았고, 나처럼 나이가 많은 수강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도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젊은 수강생들과 선생님 사이에 섞여 장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은 뒤 굴착기운전기능사 실기시험에 도전했다. 평소에는 굴삭기라고 불렀지만, 자격증 이름은 굴착기운전기능사였다.
결과는 한 번에 합격이었다.
한 번에 합격하고 나니 지게차 시험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게차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지게차 시험에서 2초가 부족했다
굴착기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일주일쯤 뒤 지게차 실기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다시 일주일쯤 뒤 두 번째 시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거의 합격할 뻔했다. 하지만 제한시간 안에 작업을 마치는 데 단 2초가 부족했다.
전진하면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순간에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2초 때문에 또 떨어졌다는 생각에 무척 아쉬웠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인에게 부탁해 밤늦게까지 지게차를 연습했다. 동작 순서를 반복하고, 제한시간 안에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연습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세 번째 시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제한시간보다 약 30초를 남기고 합격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2초가 부족했는데, 세 번째 시험에서는 30초가 남았다. 합격했다는 기쁨도 컸지만, 지난번에 부족했던 시간을 극복했다는 사실이 더욱 뿌듯했다.
물론 자격증을 하나 더 땄다고 3억 5천만 원의 대출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팔리지 않던 집이 갑자기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그곳에서 버텨야 했던 시간에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늘어났다.
66세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
내가 생각했던 전원생활과 실제 생활은 달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시골생활에는 예쁜 전원주택의 모습만 남아 있지 않다.
3억 5천만 원의 대출, 국민연금에서 생활비보다 먼저 나가던 원금과 이자, 10개월 동안 조용했던 부동산 전화, 목욕탕 카운터로 출근하던 아내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중장비 학원에 다녔던 66세의 나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시골에 들어가기 전에는 넓은 땅과 조용한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니 그 땅을 관리하는 일과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훨씬 현실적인 문제였다.
집을 매입할 때는 나중에 다시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동산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시기에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부동산을 조금 안다는 것과 실제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관리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시골생활 자체가 나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전원생활과 실제 생활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 내게 시골생활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쉽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팔리지 않는 집에서 버티다가 66세에 굴삭기부터 배우게 됐다.”
그것이 내가 직접 겪은 시골생활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은퇴 후 시골집과 토지를 매입하고 생활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매입금액과 대출금액, 금리 및 당시 상황은 필자의 기억에 따른 것이며, 특정 부동산 매입이나 대출을 권유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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