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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약속도 없었고, 누가 어디 가자고 부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TV를 보는데 부산에 가볼 만한 곳으로 용두산공원이 나오더군요.
‘그래, 오늘은 거기나 한번 가보자.’
목욕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용두산공원으로 갔습니다.
시간은 오전 9시쯤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둘이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셋이 함께 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눈에는 혼자 걷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만 혼자 온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괜히 왔나 싶었습니다.

영도와 부산항을 바라보며 혼자 앉았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공원을 조금 걸었습니다.
그러다 벤치 하나를 찾아 앉았습니다.
멀리 영도와 부산항 쪽을 바라봤습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바다와 항구를 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도 조금 났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은 허전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인데 연락할 사람도 없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참 외롭게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초라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선생님, 저 술 한잔 사주실래요?”
누군가 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분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부산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도 혼자 왔다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니 나도 조금 경계가 됐습니다.
그래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특별히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그분이 다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술 한잔 사주실래요?”
나는 바로 술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일단 공원 전망대 쪽 커피숍에 들어갔습니다.
커피라도 한 잔하면서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대구에서 혼자 부산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은 59살이라고 했습니다.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 산다고 했습니다.
혼자 이렇게 멀리 나와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젊을 때 남편과 사별했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이제 딸들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자신도 한번 혼자 바람을 쐬러 나와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꼭 모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벤치에 혼자 앉아 있던 나도 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사람도 자기 나름의 외로움을 안고 부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 옆에 또 다른 혼자가 앉아 있었던 겁니다.
결국 자갈치에서 낮술을 마셨습니다
커피를 다 마실 무렵 그분이 다시 술 한잔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 자갈치시장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수산시장 2층에 있는 횟집에 들어갔습니다.
해물과 회를 놓고 낮술을 마셨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혼자 용두산공원에 갔다가 처음 보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자갈치까지 내려와 낮술을 마시게 됐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남들만 챙기지 말고 본인도 좀 아끼면서 사세요.”
무슨 대단한 말을 해준 것은 아닙니다.
나도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식 키우고 가족 챙기다 보면 자기 자신은 늘 뒤로 밀리게 됩니다.
그분도 아마 그런 세월을 많이 보냈을 겁니다.
그날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이상하게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아마 서로 비슷한 나이를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역까지 바래다주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분이 대구로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나는 부산역까지 같이 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눈에도 눈물이 조금 고였습니다.
나도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잘 가시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기차를 타러 갔고, 나는 부산역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습니다.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는 마음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혼자 공원에 나온 내가 괜히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날 용두산공원에 혼자 나온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나온 두 사람이 우연히 말을 섞었습니다.
커피를 한 잔했습니다.
자갈치에서 낮술도 한 잔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대구로 돌아갔고, 한 사람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게 그날 있었던 일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합니다.
나만 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내가 배운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외롭다고 느낄 때,
세상에 나 혼자만 그런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꼭 친구가 아니어도 됩니다.
꼭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마음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날 아침 나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고 생각하며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날의 용두산공원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상대방의 개인사는 당시 본인에게 직접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만 기록했습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과 불필요한 세부사항은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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