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은 친구의 재혼 결심, 거제도에서 들은 속마음

2026. 10. 21. 09:50ㆍ사람과 인연

“친구야,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100만 원 주고 알아봐 달라고 했다.”

얼마 전,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서는 친구를 영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전화를 받기 전, 영섭이와 거제도로 1박 2일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그날 밤 친구는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술김에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친구의 마음이 진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이렇게 곧바로 만남을 알아보기 시작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거제도 숙소에서 마주 앉았던 그 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중학교 때 제게 볼펜을 건네주던 친구

영섭이를 처음 만난 지도 5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중학교 때 그 친구는 집안 형편이 괜찮았습니다. 친구들보다 좋은 옷을 입고 다녔고, 제게 볼펜 같은 것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돈 자랑을 하는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말수가 적었고, 자기 집안 이야기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그러다 50대 중반쯤 동창 모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퇴직한 뒤에는 가끔 전화도 하고 얼굴도 보게 됐습니다.

젊었을 때는 각자 먹고살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오히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더 반가웠습니다.

이제는 서로 주름진 얼굴을 보고 앉아 있지만,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거제도에서 들은 친구의 속마음

거제도로 낚시를 갔던 날, 낚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둘이 술을 마셨습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친구인데 그날은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지내는 이야기,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하나씩 꺼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손자·손녀 이야기를 할 때면 괜히 말수가 줄어든다는 말도 했습니다.

영섭이는 경제적으로 저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별 걱정 없이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친구가 꺼낸 것은 돈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인생 참 허망한 거여.”

그 말을 듣고 나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돈이 있으면 노후 걱정도 적고, 혼자 사는 외로움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경제적인 여유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는 듯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가 이제 곁에 없다는 것, 집으로 돌아가도 혼자라는 것이 친구에게는 큰 일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의 생활 형편은 알고 있었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떤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친구의 말을 더 듣게 됐습니다.

“친구야, 내가 새로 장가 한번 갈까?”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영섭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친구야, 내가 새로 장가 한번 갈까?”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해보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살고 싶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거는 니 마음이고, 니가 알아서 해라.”

친구의 인생이니 제가 대신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말하고 보니 너무 무심하게 대답한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제 허락을 받으려던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해 온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섭이는 자기 생각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한마디 했습니다.

“야, 친구야. 아직 살아 있네.”

둘이 한참 웃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농담으로만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흔이 넘었다는 나이부터 떠올렸는데, 친구는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거제도에서 돌아올 때는 친구가 다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사람을 만날지는 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영섭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결혼정보회사에 100만 원을 내고 만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좋은 소식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서로 마음이 잘 맞을까. 정말 다시 결혼하게 될까.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는 만남의 결과를 듣지 못했습니다. 돈을 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친구가 자기 마음을 더 미루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형편을 안다고 마음까지 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제 처지와 비교하곤 합니다.

‘저 친구는 돈도 있고 집도 있으니 나보다 걱정 없이 살겠지.’

영섭이도 제가 보기에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거제도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생활비 걱정이 적어도 함께 밥을 먹고 하루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그리울 수 있었습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생활비와 앞으로의 삶을 걱정합니다.

다만 친구에게도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너는 돈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고.”

제가 무심코 그런 말을 했다면, 친구는 그날 자기 이야기를 더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친구의 마음까지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좋은 소식이 없어도 전화할 수 있는 사이

처음에는 저도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결혼하는 일이 괜찮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와 생활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나이라고 해서 바라는 노후까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섭이는 함께 살아갈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제게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친구가 만남 이야기를 꺼내면 농담부터 하기보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함께 있을 때 마음은 편했는지 들어보려 합니다.

지금 제게는 결혼정보회사에 돈을 냈다는 소식만큼이나 거제도에서 친구가 속마음을 꺼내놓았던 일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말수가 적던 친구가 그날은 자기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영섭아.

좋은 사람 만나거든 제일 먼저 나한테 전화해라.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혹시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도 전화는 해라. 낚시를 가도 좋고, 밥 한 끼를 먹어도 좋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만 전화해야 하는 사이는 아니잖나.

중학교 때 네가 건네주던 볼펜은 이제 남아 있지 않지만, 네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아직 여기 있다.

※ 영섭은 가명입니다. 필자가 친구와 직접 나눈 대화와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며, 대화는 기억에 따라 옮겼습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족관계와 재산에 관한 세부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 이미지는 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AI로 제작했으며, 실제 인물과 장소를 촬영한 사진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