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0. 23:10ㆍ사람과 인연
“어이, 주병장 아이가!”
제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 사람들이 돌아봤습니다.
맞은편의 친구도 저를 알아봤습니다.
“육군병장 도병장이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군 복무를 함께했던 동기를 약 45년 만에 다시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약속을 잡고 찾아간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부산 부평동 깡통시장의 작은 음식점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가 서로를 알아본 것입니다.
혼자 당면 한 접시를 먹으러 들어갔던 날, 저는 생각지도 못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갓 일흔이 된 해, 추운 2월의 일요일
제가 갓 일흔이 된 해의 2월경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날씨가 꽤 추웠습니다. 특별한 약속도 없었지만 혼자 집에 있기가 답답해 부산으로 나왔습니다.
자갈치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광복동 쪽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다 젊었을 때 친구들과 자주 다니던 고갈비 골목을 지나게 됐습니다.
고등어구이를 앞에 놓고 술잔을 나누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걷던 길이었습니다. 일흔이 되어 혼자 다시 걸으니 익숙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그렇게 발길을 옮겨 부평동 깡통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오후 2시쯤이었습니다. 배가 출출해 당면과 잡채, 어묵 등을 파는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당면 한 접시와 막걸리를 주문하고 앉았습니다.
옆자리에는 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딸로 보이는 여성과 일곱여덟 살쯤 된 아이도 함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성의 딸과 손녀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족과 시장에 나들이 나온 사람이겠거니 했습니다.
지나가던 군인 한 명이 대화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때 시장 쪽으로 군복을 입은 군인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득 제 군 복무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옆자리 남성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나도 저런 군인 시절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도 포병 부대에서 복무했다고 했습니다.
“어라, 나도 포병 나왔는데.”
저는 행정병이었다고 했고, 그분은 포병 측지병으로 경기도 파주에서 근무했다고 했습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무하던 곳과 군대 이야기가 겹치니 얼굴에서도 오래전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설마 그 친구인가.’
그러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이, 주병장 아이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바로 그 동기였습니다.
친구는 생일을 앞두고 부산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도 한동안 놀라워했습니다.
약 4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니,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아내와 사별한 뒤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이 생일이라 부산에 사는 딸의 집에 내려왔고, 딸과 손녀를 데리고 시장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혼자 바람을 쐬러 나왔고, 친구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나온 길이었습니다.
조금만 다른 시간에 왔거나 다른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옆에 앉았더라도 군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친구의 딸과 손녀가 먼저 자리를 떠난 뒤, 우리는 근처 커피숍으로 옮겼습니다.
마주 앉으니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인데도 군대 이야기 하나를 꺼내면 다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습니다.
커피숍에서 떠올린 겨울밤의 기억
군 복무 당시 우리 내무반에서 같은 동기로 지낸 사람은 둘뿐이었습니다.
함께 훈련을 받고 모포를 나란히 깔고 잠을 잤습니다. 힘든 날이면 서로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습니다.
제가 먼저 꺼낸 것은 어느 겨울밤 보초를 서던 이야기였습니다.
막사 주변에 눈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습니다. 밤 10시쯤 보초를 나가려는데 주병장이 따라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눈 속에 묻어두었던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꺼내 건넸습니다. 추운 밤에 고생할 동기에게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밤 12시에 친구와 보초를 교대하면서 남아 있던 소주를 건넸던 기억도 났습니다.
근무 중 술을 마신 것은 당시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철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날 커피숍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젊었던 우리 모습을 떠올리며 웃었습니다. 잘못된 행동과는 별개로, 추운 밤에 저를 생각해 주던 친구의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침상 밑에 놓여 있던 군화 한 켤레
이번에는 친구가 군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상병이었을 때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외출을 앞두고 군화가 너무 지저분하다며 새 군화 한 켤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제 침상 밑에 군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주병장이 챙겨준 것이었습니다.
군화 안쪽에는 제 이름까지 크게 적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잊고 있던 장면이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저는 무심코 했던 말인데 친구는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도 고마웠겠지만,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으니 그 마음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잊고 지낸 일도 있었는데, 친구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보낸 군 생활이 각자의 마음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는 커피숍에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옛 부대 이야기를 할 때면 일흔의 두 사람이 잠시 젊은 군인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재회한 뒤에는 서로의 건강을 물었습니다
헤어질 때 우리는 앞으로 안부를 주고받자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친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 하루하루 잘 지내자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 뒤로 가끔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다 각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친구가 궁금해 제가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이런저런 건강 이야기를 하다가 제게도 몸을 잘 챙기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혼자 지내며 자기 걱정도 있을 텐데, 제 안부를 챙기는 말이 고마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제 몸을 조금 더 살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만난 친구와 오래 연락하려면 서로 건강하게 지내야 할 테니까요.
군대에서는 추운 밤에 보초를 나가는 동기를 챙기더니, 이제는 전화로 몸을 잘 돌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정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안부를 묻는 이름이 됐습니다
그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특별한 일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을 구경하고 당면 한 접시를 먹고 돌아오면 그만인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외출 끝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다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얼굴만으로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함께 지냈던 곳을 이야기하고, 오래전 기억을 하나씩 꺼내면서 눈앞의 사람이 그때의 동기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친구에게도 제가 그렇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이제는 연락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기만 하던 세월을 지나,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에는 너무 뜸해지기 전에 제가 먼저 연락하려 합니다.
“주병장, 잘 지내고 있나?”
예전에는 같은 내무반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무사히 지내는지 묻는 이름이 됐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도병장” 하고 저를 불러주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잘 지낸다는 대답을 들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필자가 군대 동기와 재회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대화와 군 복무 시절의 일은 두 사람이 나눈 기억에 따라 정리했습니다.
※ 이미지는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AI로 재현한 장면이며, 실제 촬영 사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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