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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장 상사 아들 결혼식장이었습니다.
축의금을 내고 돌아서는데 옛 직장 동료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몇 달 전에 딸 결혼한다고 나한테 연락을 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부조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급히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그날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릅니다.
그 돈 몇 푼 때문에 참, 이렇게 사나이 자존심을 구겨버리다니.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인근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시켰습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그 동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경조사비 30년치, 컴퓨터 한구석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휴대폰을 보다가 몇 달 전 문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은 경조사와 관련된 문자가 세 개나 왔던 날입니다.
하나는 사촌 딸이 결혼한다는 연락이었고, 또 하나는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옛 직장 동료가 막내딸을 결혼시킨다는 문자였습니다.
대충 계산해 보니 그달에 경조사비로 30만 원에서 40만 원 정도는 나갈 것 같았습니다.
아이고.
이번 달도 빠듯하게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이런 문자가 오면 컴퓨터부터 켭니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경조사비 목록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30년치는 되는 것 같습니다.
한글 파일에 이름을 적어놓았는데, 제대로 정리된 자료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폴더 한구석에 사람 이름과 금액이 주욱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찾아보는 것도 일입니다.
이름도 비슷비슷하고, 내가 기억하는 금액과 숫자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그때 얼마를 했더라?”
하나하나 찾아보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점점 더 걸립니다.
그 파일을 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게 다 사람들이 나한테 해준 거구나.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하는 거고요.
아들에게 경조사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하하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부조할 데가 왜 이렇게 많노. 큰일 났다.”
그냥 흘려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용돈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빠도 그런 거 이제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모두들 형편이 어렵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도 맞지만 앞으로는 내가 돌려받지 못할 경우도 많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도 압니다.
그런데 나는 아들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야, 이 부조금은 니 결혼할 때도 다 받은 거야. 지금은 내가 다 갚아줘야 되는 거야.”
그러고는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30만 원이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심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나는 아들이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줄 줄 알고 전화를 했던 겁니다.
그래도 경조사비를 낼 수 있게 됐으니 한편으로는 자존심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 됐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는 갔습니다
며칠 뒤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갔습니다.
사촌 딸 결혼식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옛 직장 동료 딸 결혼식에는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퇴직한 지가 벌써 10년쯤 됐습니다.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 직장 동료로서 경조사를 챙겨오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이에 언제 또 만나겠나.’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부조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은 계속 찜찜했습니다.
사실 안 갈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가지 않을 이유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었겠지요.
우리 나이에 5만 원, 10만 원이 작은 돈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던 차에 옛 직장 상사에게서 청첩장이 왔습니다.
그분은 퇴직한 뒤에도 나와 주기적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 잘 챙겨주던 분입니다.
그분 아들이 결혼한다고 해서 나도 당연히 결혼식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 동료를 만난 겁니다.
딸 결혼한다고 몇 달 전에 연락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이 참 부끄럽습니다.
사람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린 것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밖으로 나와 돼지국밥집에 들어갔습니다.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이랬을까.’
사실 아들이 준 돈으로 충분히 낼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정말 못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결국 안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후회했습니다.
아들에게는 도리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더 웃긴 것은 평소 아들에게는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받을 것은 받고, 갚을 것은 갚아야 한다.”
“경조사에는 웬만하면 얼굴을 보여야 한다.”
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면서 정작 내가 그렇게 됐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란 것이 이상합니다.
돈이 넉넉할 때는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돈이 뭐가 아깝노.”
그런데 내 통장에 남은 돈을 생각하고, 다음 연금이 들어올 날을 기다리고 있으면 5만 원도 다르게 보입니다.
10만 원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젊을 때와 지금은 돈의 무게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 동료를 무작정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왜 오지 않았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내 행동을 내가 봤습니다.
그리고 그게 싫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 겁니다
아마 앞으로 이런 일이 내가 죽기 전까지 정말 많을 겁니다.
친구가 결혼할 수도 있고, 자녀가 결혼할 수도 있고, 누군가 부모님을 떠나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경조사비가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 나이에는 5만 원, 10만 원이 정말 소중합니다.
그래서 나도 또 갈까 말까 고민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또 못 갈 이유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없었던 일처럼 넘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날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5만 원이나 10만 원을 쓰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마음이 좁아질 수는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럴 때 적어도 내 마음까지 거짓말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
그렇게 인정하면 될 일인데,
‘나는 이 사람과 별로 안 친하니까.’
‘이제 다시 볼 일도 없으니까.’
이런 핑계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사람을 외면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겁니다.
그날 돼지국밥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오래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구나.
다만 모든 경조사를 다 챙길 수는 없습니다.
내 형편을 무시하고 무리해서까지 돈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못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사람을 피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전화 한 통이라도 하고,
“미안하다. 내가 이번에는 형편이 안 돼서 못 간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 동료를 만나면 먼저 인사하려고 합니다.
그때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때 미안했다.”
그 한마디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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