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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추억

55년 친구 이박사가 떠난 후, 1,400만 원보다 아픈 것이 있었습니다

dobadalife 2026. 10. 7. 21:46

은퇴한 옛 직장 동료와 금정산에 산행을 갔다가 하산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비보를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약 55년을 붙어 다닌 친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나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슬퍼서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그 친구를 이박사라고 불렀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똑똑하고 영리해서 친구들이 박사라고 불렀던 친구였습니다.

병원에 서 있으니 지난 세월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이런 친구도 가는구나.’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가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왜 미웠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친구가 야속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처음 꺼낸 1,400만 원 이야기

장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싫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박사가 살아 있을 때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2,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중 1,400만 원을 빌려줬습니다.

현금으로 달라고 해서 5만 원권으로 바꿔 건넸습니다.

55년을 알고 지낸 친구였습니다.

나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렇게 돈을 주면 어떡해요?”

“계좌이체를 하지, 왜 현금으로 바꿨어요?”

아들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친구를 믿었습니다.

친구가 현금으로 달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준 것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세상에 없고,

그 돈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게 참 허망했습니다.

친구 아들과 카페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나는 이박사의 아들을 조용한 카페로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나와 자기 아버지가 옛날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같이 술도 마시고,

같이 웃고,

서로의 인생을 지켜봐 온 사이였는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400만 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는 잘 모른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물론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죽은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도 조금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내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아버지와 돈 문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아이를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날 우리가 나눈 말과,

그 말을 듣고 내가 느꼈던 서운함까지입니다.

납골당에 가서 친구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며칠 뒤 이박사의 납골당에 갔습니다.

친구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야, 이박사야.

니가 죽고 나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또 다른 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술을 한잔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이박사 저승길에 노잣돈 넉넉하게 줬다고 생각해야지.”

그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씁쓸했습니다.

1,400만 원이라는 돈이 작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돈보다 친구의 모습이 더 많이 생각났습니다.

남은 안주를 딸에게 싸가던 친구

그날 밤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박사의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아이는 울면서 자기가 돈을 갚아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돈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기억하는 이박사의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같이 술을 마시다가 맛있는 안주가 남으면 그 친구는 꼭 싸갔습니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딸내미 줘야지.”

그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날따라 그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돈을 빌려주던 날의 모습보다,

술자리에서 남은 안주를 싸 들고 가던 친구 모습이 더 또렷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딸을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친구 딸에게 말했습니다.

“돈은 모르겠다.”

“다음에 내가 아프든지 죽든지 하면 그때 기억해서 한번 찾아와라.”

“나는 그것 말고는 바랄 게 없다.”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한참 뒤척였습니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55년 친구의 1,400만 원은 이제 잊으려 합니다

그렇게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 산소에 갔다가 불현듯 이박사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산소 앞에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이, 이박사.”

“하늘에서 뭐 하노.”

“내 좀 챙겨줘라.”

“나이 드니까 지갑은 얇아지고 힘도 없다.”

“복 있으면 살짝 주고 가라.”

혼자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같이 있을 때가 봄날이었는데.”

참 고집스러운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고집스러운 모습까지 그립습니다.

1,400만 원은 이제 찾지 않을 겁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돈을 돌려받는 문제로 친구의 가족과 더 얽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돈보다 55년 동안 함께했던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이박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한마디는 할 겁니다.

“야, 이박사.”

“내 돈 1,400만 원은 됐다.”

“대신 다음에 만나면 그때 술값은 니가 내라.”

55년을 함께한 친구니까,

그 정도는 받아도 되겠지요.

이박사야.

다음에는 먼저 가지 마라.

아니, 이미 먼저 가버렸으니 기다리고 있어라.

나중에 만나면 술 한잔하자.

그때는 남은 안주도 딸한테 싸주지 말고,

우리 둘이 끝까지 다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