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동전 3,200개, 봉구 형님과 나의 10년

2026. 10. 29. 23:39ㆍ사람과 인연

과일 한 상자와 막걸리 두 통을 들고 봉구 형님 댁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나보다 열 살 많은 동네 절친, 봉구 형님의 생일입니다.

방에 들어서니 형님은 여느 때처럼 종이상자에 담긴 100원짜리 동전을 세고 계십니다.

형님이 모아둔 동전은 모두 3,200개. 돈으로 따지면 32만 원이나 됩니다.

형님은 고스톱을 칠 때면 꼭 100원짜리 동전만 꺼내십니다.

“10원짜리는 너무 작고, 500원짜리는 노름 같아서 부담스럽다.”

형님 나름대로 정해놓은 기준입니다.

그런데 형님과 오랫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판돈이 작다고 해서 이기고 지는 마음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형님 앞에 놓인 동전들을 바라보니 우리가 가까워졌던 10년 전 겨울밤이 떠오릅니다.

추운 겨울밤에 시작된 인연

형님과 가까워진 것은 10년 전, 내가 정년퇴직할 무렵이었습니다.

형님도 그즈음 오랫동안 해오시던 건물 옥상 방수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몹시 추웠던 1월 어느 날, 새벽 1시쯤이었습니다.

동네 공터 뒤편 전봇대 아래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술에 취한 봉구 형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곧바로 119에 신고했습니다. 형님은 응급실로 옮겨졌고, 다행히 한 시간쯤 뒤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나는 형님을 집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그 추운 겨울밤에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날 이후 형수님은 나를 친동생처럼 반겨주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면 빠짐없이 불러주셨고, 나도 자연스럽게 형님 댁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특별한 약속을 하거나 가족처럼 지내자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밥 한 끼 함께 먹고, 막걸리 한잔 나누고, 별일 없는지 안부를 묻다 보니 어느새 형님은 내게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기면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형님

형님 댁에 놀러 가면 두 분이 고스톱을 치고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형수님이 자리를 내주시면 내가 그 앞에 앉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화투를 치다 보면 어느새 새벽 한두 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밤새 화투를 쳐본 경험이 있어, 나는 내 실력이 형님보다 조금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형님과 칠 때는 꼭 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져드리기도 했습니다.

대개 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이 형님 앞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럴 때면 형님은 동전을 쓸어 담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마치 큰 싸움에서 승리한 장군 같았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형수님이 내주시는 술과 안주까지 얻어먹고 나면 돈을 잃었다는 생각보다 즐겁게 놀다 간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한 판 져드리는 것이 형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에 담긴 지난 세월

그러던 어느 날, 형수님에게 형님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님의 아버지는 노름으로 시골의 논밭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그 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형님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여러 막일을 하며 살아오셨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오랫동안 몸으로 일하며 조금씩 살림을 일구셨습니다.

가끔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시다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제 좀 살 만하니까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버렸어.”

그 말을 들을 때면 형님이 살아오신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노름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깊어서인지 형님은 큰돈을 거는 노름이나 투기를 멀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들과 100원짜리 동전을 놓고 치는 고스톱만큼은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방 한쪽에 놓인 동전 상자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저 돈을 모아둔 상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힘들게 일한 뒤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찾는 형님만의 소박한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동전들이 형님의 지난 상처까지 달래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형님은 혼자 계실 때보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화투를 칠 때 훨씬 더 자주 웃으셨습니다.

작은 판돈에도 상했던 마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형님의 승부욕도 점점 강해졌습니다.

이길 때는 아이처럼 좋아하시다가도 돈을 잃으면 어떻게든 본전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 반복되자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났습니다.

하루쯤은 형님의 고집을 꺾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고스톱을 치던 중 몰래 패를 한 장 더 가져오는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그날은 내가 판돈을 많이 가져갔고, 형님은 크게 속상해하셨습니다.

“당분간 너랑 안 친다!”

형님은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그동안 내 쪽으로 넘어온 동전은 약 600개나 되었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6만 원이었습니다.

형님이 아끼던 동전이 그만큼 줄어들었으니 속상하실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보다 더 큰 문제는 내 행동이었습니다.

아무리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라도 속임수를 쓴 것은 분명히 내 잘못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형님과 함께 화투를 치는 일은 뜸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형님이 아끼던 동전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얼마 뒤에는 형수님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형님이 노인정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돈 문제로 다툼이 생겨 파출소에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다툼 중에 깨진 상대방의 안경 렌즈 값을 물어드리고, 훈방된 형님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파출소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시던 형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처음 가까워졌던 겨울밤에는 술에 취해 쓰러진 형님을 집으로 모셔다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0원짜리 동전 때문에 파출소까지 찾아가 형님을 모시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형님은 별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나도 굳이 무슨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으로는 이런 일로 형님을 모시러 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실에서도  화투 한 벌을 구해달라고...

그 뒤 어느 날, 형님이 옥상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발목 인대가 파열되고 골절상까지 입으셨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2인실에 누워 계시던 형님은 나를 가까이 부르더니 작은 목소리로 부탁하셨습니다.

“아우야, 화투 한 벌만 구해다 다오.”

순간 어이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까지 받으신 분이 화투 생각부터 하시다니요.

“형님, 병실에서는 치료부터 잘 받으셔야지요. 간호사한테 들켜도 나는 모릅니다.”

그렇게 타박하고도 결국 화투 한 벌과 100원짜리 동전 200개를 가져다드렸습니다.

이틀 뒤 저녁에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옆 침대 어르신과 마주 앉아 화투를 치고 계셨습니다.

나를 발견하자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고스톱이나 치라고 손은 안 다치게 해주셨나 보다. 천만다행이지!”

참 못 말리는 형님이었습니다.

몸은 불편해도 농담할 기운은 남아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님이 병실에서 새벽까지 화투를 치다가 간호사에게 화투를 압수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화투를 놓지 못하시는 형님이 참 못 말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화투를 가져다드린 나 역시 잘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간호사에게 화투를 압수당하고 머쓱해하셨을 형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동전보다 오래 남았으면 하는 것

형님은 지금도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우야, 100원짜리 고스톱은 노름이 아니라 치매 예방약이야.”

고스톱을 좋아하시는 형님 특유의 농담입니다.

나는 웃으며 받아넘깁니다.

“형님, 아무리 좋아도 너무 자주 치면 안 됩니다. 쉬엄쉬엄 하세요.”

이제는 형님이 이기고 지는 일에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판돈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 때문에 다투고 밤잠까지 줄인다면 마냥 즐거운 놀이일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도 형님 앞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놓여 있습니다.

그 동전을 바라보니 지난 10년의 세월이 떠오릅니다.

추운 겨울밤의 응급실, 형수님이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 함께 웃고 때로는 마음이 상했던 날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가져온 과일 상자를 내려놓고 막걸리 두 통을 꺼냅니다.

“형님, 오늘은 동전 그만 세시고 저하고 막걸리나 한잔합시다.”

형님과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게 되고, 생일이면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찾아가게 됩니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형님이지만,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형님이 오래도록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화투를 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과일을 나눠 먹으며 지난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좋겠습니다.

나는 형님과 마주 앉아 막걸리 한잔을 따르며 말합니다.

“형님, 생신 축하합니다. 오래오래 이렇게 마주 앉읍시다.”

언젠가 형님의 동전 상자가 비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시간만큼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