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9. 21:05ㆍ몸과 건강
나는 남의 병문안을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 누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리면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 병실 문을 열곤 했습니다. 손을 잡아 주고 “금방 나으실 겁니다”라는 말을 건넨 뒤, 내 발로 걸어 나오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병실에 누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됐습니다.
예순 무렵,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 때문인가. 자업자득인가.’
건강검진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전까지는 나름대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쉬는 날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 쪽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검사를 의뢰받은 곳은 부산대학교병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병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대장 쪽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
그 정도로 여기며 검사받을 날을 기다렸습니다. 내 몸이 아직은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약한 정밀검사를 이틀 앞둔 밤, 갑자기 배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 결국 119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고, 검사 결과 담낭에 돌과 염증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건강검진 결과가 떠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대장 정밀검사를 권유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입원한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곳에서 대장 검사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검사와 치료 과정에서, 내가 대장암 3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나부터 탓했습니다
젊었을 때, 특히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담배도 피웠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그렇게 살더니 결국 이런 일이 생겼구나.’
당시에는 나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주변에서 술과 담배 이야기를 하면 그 말도 무겁게 들렸습니다.
가족력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병에 걸린 이유를 혼자 짐작한다고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갑작스러운 진단에 놀라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자책과 실제 발병 원인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 때문에 암이 생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일은 치료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대장과 담낭 수술을 함께 받았습니다
수술 일정을 잡고,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 담낭 수술도 함께 받기로 했습니다.
그때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이제 쓸개 없는 놈이 되는구나.’
평소 말로만 쓰던 표현이 내 몸에 생길 일을 가리키게 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수술은 준비 과정까지 합해 약 8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수술을 마친 뒤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천장 불빛이 보였습니다.
가만히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얼마 전 직장을 구한 외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곧 돈 걱정도 따라왔습니다.
‘왜 암보험을 넉넉히 들어 놓지 않았을까.’
수술을 마치고 누워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치료에 얼마나 돈이 들지, 가족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지 걱정됐습니다.
말로만 듣던 항암치료도 두려웠습니다.
아들 생각과 치료비 걱정, 앞으로 견뎌야 할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6개월 동안 열두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는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치료는 모두 열두 번이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약 6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기억으로는 치료받을 때마다 병원에 4~5일 정도 입원했습니다.
백혈구 수치가 낮게 나와 마음을 졸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 치료를 이어 가던 예순에는 위암 초기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때 겪은 일은 별도의 글에 적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장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겪었던 일과 회복 과정을 돌아보려 합니다.
그 힘든 시간에 내 마음을 유난히 괴롭힌 것이 또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싫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그렇게 속상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날에는 아픈 것보다 머리카락 빠지는 일이 더 싫게 느껴졌습니다. 큰 병을 치료하는 중에 무슨 머리카락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 마음은 그랬습니다.
뒷머리는 그나마 나았지만 윗머리는 내가 보기에도 절반쯤 빠진 것 같았습니다.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항암치료를 받던 중, 탈모 관리를 잘한다는 부산 서면의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열 번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머리에 침을 맞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침도 굵고 통증도 상당했습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침을 맞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리카락이 다시 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50만 원가량을 쓰고 치료를 그만뒀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한 번 치료받을 때 약 5만 원이 들었습니다. 열 번 정도 받았으니 모두 50만 원가량 쓴 셈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의원에서는 좀 더 꾸준히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통증도 부담스러웠고, 스스로 느끼는 변화도 크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에는 항암치료가 끝나고 몸이 회복되면 머리카락도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항암치료를 마친 뒤 실제로 조금씩 자라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예전 모습과 비교하면 아쉬웠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윗머리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도 회복을 기다렸습니다
항암치료를 마친 지 5~6개월쯤 됐을 때, 탈모에 사용하는 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울산에 있는 한방병원을 찾아가 약을 처방받았고, 약 4개월 동안 먹었습니다.
그 무렵 윗머리에 머리카락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서 손으로 윗머리를 쓸어 보았습니다. 손끝에 짧은 머리카락이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휑하게 느껴지던 자리였습니다.
그날은 한참 동안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작은 변화였겠지만,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약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랐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난 뒤 시간이 흐르며 나타난 변화와 약을 먹은 시기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머리카락 때문에 여러 곳을 찾아다녔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큰 병을 앓아도 일상의 걱정은 계속됐습니다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하루 종일 암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병실에서는 아들 걱정을 했고, 치료비와 보험 생각도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는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속상해했습니다.
큰 병을 겪으면 다른 걱정은 모두 작아질 줄 알았습니다. 직접 아파 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몸이 힘든 와중에도 생활 속 걱정은 이어졌습니다. 남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마음이 흔들렸고, 머리카락이 조금 자란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치료를 받고, 회복을 기다리며 지냈습니다.
일흔이 되어 돌아보는 그때의 병실
예순 무렵 큰 수술을 받았던 내가 어느덧 일흔이 됐습니다.
지금은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이나 건강검진 결과를 예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하던 때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병문안을 다닐 때는 “금방 나으실 겁니다”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건넸습니다.
직접 병실에 누워 보니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여러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앞으로의 치료가 두렵고, 자기 몸이 아픈데도 가족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쉽게 짐작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머리카락 한 올에 속상해하고 기뻐했던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남들은 모르는 걱정과 바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 시절을 돌아보면 큰 수술과 항암치료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병실 천장 불빛 아래서 아들을 생각하던 순간, 거울 앞에서 다시 자란 머리카락을 만져 보던 아침도 함께 떠오릅니다.
힘든 치료를 견디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지나온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한 개인적인 치료 경험입니다. 치료 횟수와 기간, 비용 등은 당시의 경험이며, 언급한 탈모 관리나 약의 효과를 보장하거나 권유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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