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0. 00:22ㆍ몸과 건강
어금니가 시큰거릴 때면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암 진단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던 날입니다.
그때 내 나이는 예순이었습니다.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이어 가던 중, 담당 의사에게 위암 초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가족 생각도 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가지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암이라는 말을 들은 그날은 달랐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위암 초기입니다”라는 말에 머릿속이 텅 비었습니다
대장암 치료를 받던 중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위에서 병변이 발견돼 조직검사를 했고, 결과를 들으러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날 위암 초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미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견디고 있었는데, 또 암이라니요.
순간 머릿속이 텅텅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으니, 당시 나는 약 30초 동안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고 합니다. 정작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는커녕,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잠시 뒤 정신을 가다듬고 치료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한 시간 가까이 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내 귀에는 ‘위의 절반 정도’라는 말만 남았습니다
당시 의사는 위의 절반 정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의료기록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정확한 수술명이나 당시 설명을 모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내 머릿속에 깊이 남은 말은 ‘위의 절반 정도를 잘라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만으로도 힘들었는데, 또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버텼습니다. 의사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치료에 관해 잘 알아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무서웠던 겁니다.
나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계속 물었습니다. 병변이 있는 부분만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는 없는지도 물었습니다.
그때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이미 지친 몸으로 또 한 번 큰 수술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두려웠습니다.
병원을 나와 집 대신 서점으로 갔습니다
그날 병원을 나선 뒤 나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부산 서면에 있는 영광도서로 향했습니다.
위암과 대장암에 관한 책을 샀습니다. 민간요법을 다룬 암 관련 책도 몇 권 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서점으로 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막막한 마음에 뭐라도 내 손에 쥐고 싶었던 것입니다. 책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설명이나, 두려움을 조금 덜어 줄 말을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습니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책에 나온 방법으로 병원 치료를 대신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겁이 났고, 뭐라도 읽으면서 내게 생긴 일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아무리 펼쳐 봐도 내 상황에 꼭 맞는 답이 적혀 있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치료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의료진과 나눠야 했습니다.
내가 ‘각서’처럼 기억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의료진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나는 내시경으로 병변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시술 이름과 당시 작성한 서류의 명칭은 지금 기억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 서류를 ‘각서’처럼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 명칭과 내용까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장을 찍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했던 방법으로 치료받게 됐지만, 혹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큰 수술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과 치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치료를 마친 뒤 의사는 결과가 잘됐다는 취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내 선택과 결과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치료를 권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치료받았는지를 돌아보는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치료가 끝나도 걱정까지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치료를 마친 뒤에도 혹시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오래갔습니다.
생활을 조금 더 조심하게 됐고,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중 꾸준히 이어 온 것이 가벼운 근력운동입니다.
운동은 내 몸을 챙기기 위해 해 온 생활습관 중 하나입니다. 운동 덕분에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검진도 계속 받았습니다. 몸에 걱정되는 증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치료 이후의 일상을 살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흘렀고, 예순이던 나는 일흔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눈앞의 치료를 어떻게 견딜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글로 돌아보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흔이 된 지금, 예순의 나를 돌아봅니다
한때는 내가 서류에 도장을 찍었으니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 몸에 관심을 갖고 치료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묻고, 걱정되는 것은 의료진에게 이야기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그 시간을 통해 배웠습니다.
진료실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는 30초는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나와 영광도서로 향했던 일은 기억합니다. 큰 수술이 무서워 의사에게 화까지 냈던 일도,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순간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나는 몹시 겁에 질린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한 번 큰 병을 겪고 있던 중이라 두 번째 진단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두 번째 암 진단을 받던 날의 두려움은 잊히지 않습니다. 큰 수술이 무서워 의사에게 화를 냈던 것도, 병원을 나와 서점으로 향했던 것도 어떻게든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또다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치료를 받으며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때 예순이던 내가 어느덧 일흔이 됐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난 일을 글로 적을 수 있는 오늘이 고맙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쓴 개인적인 암 진단·치료 경험입니다. 정확한 시술명과 당시 서류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의 치료 방법과 검진 계획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몸과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흔의 우울한 마음, 나이 탓이라고 넘기기 전에 (0) | 2026.10.27 |
|---|---|
| 잔고는 55만 6천 원, 녹용은 55만 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1) | 2026.10.23 |
| 헬스장에서 ‘교감 선생님’이 된 나, 일흔의 허세를 감싸준 한마디 (0) | 2026.10.10 |
| 대장암 3기, 병문안 다니던 내가 환자가 되었습니다 (0) | 2026.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