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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의 삶, 도바다 라이프 1957년생 남자의 실제 경험과 곁에서 직접 들은 삶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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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스님 형님이 내게 남긴 말, 상선약수

이 글을 쓰는 지금, 내일모레면 형님의 81번째 생일입니다.찾아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형님을 미워해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존경하는 마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망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끈끈한 정도 남아 있습니다.내 스님 형님은 원래 우리 집안의 기둥 같은 사람이었습니다.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가난한 형편에서도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취직도 일찍 해서 돈을 벌었고 집안에도 힘이 되어줬습니다.그런데 형님의 인생은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반듯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나를 걷게 해준 형에게 나는 욕을 했다나와 형님은 열 살 차이가 납니다.내가 지금까지 형님에게 받은 것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내 아픈..

가족·돌봄 2026. 8. 27. 21:58
장인과 나,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을 선선하게 맞으면서 장인이랑 한잔하면 정말 든든하고 좋았어요. 노포에서 꼼장어에 소주 한잔이었죠. 그때도 장인은 나를 도서방이라고 부르면서 산 이야기, 땅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한잔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어요. 요즘 나이가 드니까 부모님 산소에 자주 가게 되는데, 그날은 갑자기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3일 뒤에 돌아가신 장인이 생각났습니다.꼼장어 소주, 장인과 마지막 한잔정말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생 때인가 그랬어요. 그때 장인어른이 우리 아들 강아지 고르는 거 한번 같이 봐준다고 오셨거든요. 그때 한잔했습니다.그날 꼼장어에 양파랑 대파 넣고 양념해서 은박지 깔고 구워 먹었지요. 그 집이 노포였어요. 바람을 선선하게 맞으면서 장인이랑 한잔하면 그게 ..

가족·돌봄 2026. 8. 21. 14:45
제사 갈등 실화, 아들이 '할아버지가 학생 때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했다

제삿날 저녁, 작은형님이 상을 발로 찼습니다. 과일상이 그대로 엎어졌어요. 그날 나는 제사상을 바꿔서 차렸습니다. 전도 안 부치고 생선도 나물도 없이 과일만 올렸고, 지방도 한자로 안 쓰고 한글로 아버지 이름, 어머니 이름을 적어 세워놨어요. 형님들한테는 미리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 우리 부부 마음대로 한 겁니다. 작년을 끝으로 부모님 제사는 그만 모시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 저녁이 있었습니다.제사 15년, 아버지 손잡고 따라다니던 아이가 모시게 됐다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약 15년이 흘렀네요. 그 15년을 내가 제사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형님이 두 분 살아 계시고 여형제가 넷인 집안인데, 형님 두 분 모두 연세가 일흔여덟, 여든으로 나와는 다른 지방에 살고 계세요. 그리고 그 집안 자식은 딸만 ..

가족·돌봄 2026. 8. 14. 11:41
알파벳 몰랐던 70대 할아버지, 손녀와 이태원 영어 약속을 했다

어느 날 일곱 살 손녀 YS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받자마자 “그랜드파더” 하면서 영어로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몇 마디 알아듣고 나머지는 눈치로 때웠습니다. 조금 있다가는 중국말까지 섞어서 이야기하데요.나는 그저 “그래, 잘한다. 우리 YS 잘한다”고 했습니다.전화를 끊고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오래전 아들 영어책이 생각났습니다.영어 문장 위에 한글로 “아엠어보이”라고 또박또박 적어놓았던 그 아이가 지금 이 일곱 살짜리 아이의 아버지입니다.손녀 전화에서 내가 알아들은 건 몇 마디뿐이었다나는 70대이고 아들은 40대, 손녀는 7살입니다. 우리 집 3대가 영어를 처음 만난 모습은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손녀와 전화할 때 솔직히 말하면 영어를 대충 알아들었다는 것도 좀 과장입니다. “그랜드파더” 같..

가족·돌봄 2026. 8. 13. 10:16
어머니 임종을 못 본 아들, 부산추모공원에서 수십 년 피운 담배를 끊었다 어머니 임종을 못 본 아들, 부산추모공원에서 수십 년 피운 담배를 끊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곁에 없었다.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결국 임종을 보지 못했다. 장례를 마친 뒤 먼저 가신 아버지 곁에 어머니를 모시려고 부산추모공원에 갔다. 두 분이 나란히 계신 자리 앞에서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약 수십 년 동안 피운 담배를 끊겠다고 맹세했다. 끊기 직전에는 하루 두세 갑이 보통이었던 담배였다. 사람들은 내 의지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내게 금연은 건강을 위해 세운 계획이 아니었다. 살아 계실 때 외면했던 어머니에게 너무 늦게 한 약속이었다.병든 어머니가 싫어 집에 늦게 들어갔다어머니는 치매로 약 5년을 지내셨다. 어느 날 낙상한 뒤 고관절 부근에 금이 간 것도 모르고 집에서 한참을 고생하셨다. 뒤늦게 병원에 모셨지만 의사는 연세가 많아 수술이 어렵다며 집에서 ..

가족·돌봄 2026. 8. 10. 10:19
아버지 치매 15년·어머니 5년,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였다 아버지 치매 15년·어머니 5년,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였다

“아버지 치매 15년, 어머니 5년.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었다.”아버지는 치매로 약 15년을 지내셨고 어머니도 약 5년을 지내셨다. 그때 나는 회사에 다녔고 월급은 200만원 정도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비를 맞추며 살았지만, 집 안에서 실제로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은 집사람이었다.나는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부모님 돌보는 일을 집사람에게 많이 넘겼다. 그러면서도 집사람에게는 늘 비슷한 말을 했다.“조금만 고생하자. 나중에는 내가 다 해줄게.”그때는 나도 진심이었다. 그런데 70살이 되어 생각해보면 그 말 중에 내가 지킨 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치매 부모님을 모실 때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아버지가 치매를 앓은 기간은 약 15년이었다. 어머니도 약 5년을 ..

가족·돌봄 2026. 8. 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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